[단편소설] Happy birthday to... (지은이: 나; 주예린)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온종일 난 그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죠
난 가까운 책방에 들러서 예쁜 시집에 내 맘 담았죠
그 다음엔 근처 꽃집으로 가서 빨간 장미 한 송일 샀죠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가는 길 너무 상쾌해
품 속에는 장미 한 송이, 책 한 권과 그댈 위한 깊은 내 사랑...
- 권진원 「Happy birthday to you」 중에서
Happy birthday to...
- 주예린 지음
여기저기서 오는 문자들.
- 생일 축하해.
- 생축. 좋은 하루 보내길.
- 생일 축하. 술 한잔 하자.
- 생일인데 오늘 뭐 하냐?
- 오늘 뭐 하냐? 나 좀 불러라.
- 형, 생일 축하드려요.
- 형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 오빠, 밥 좀 사 주세요. 선물 사 드릴게요.
- 오빠, 내가 선물 보냈으니까 밥 좀 사 줘. 생일인데 쏴야지.
- ...
남준은 생일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인 생일 파티가 지겨웠다. 낳아 준 데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지겨웠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린 뒤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있던 때였다.
창밖 저 멀리 그녀가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빨간 우산을 쓴 소녈 봤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건넨 말
저 어디까지 가세요
때마침 저와 같은 쪽이네요
우산 하나로 걸어갈까요
- 김건모 「빨간 우산」 중에서
빨간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는 그녀.
내려가서 말을 걸어 보고 싶어. 어디 가는 길이니...
남준은 커다란 우산을 들고서 내려갔다. 휑한 아파트 단지 안,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바람이 많이 불어 그녀의 우산이 뒤집어져 그녀가 휘청거렸다.
"어엇."
그녀의 긴 치마가 바람과 비 때문에 휘감겨서 엉겨붙은 듯 보였다.
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었다.
거센 빗줄기에 머리가 반쯤 젖은 그녀의 얼굴에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녀가 뒤집어진 우산을 똑바로 펴려 애쓰고 있었다.
"제가 펴 드릴까요?"
-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씌워 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꺅!"
바람이 다시 세차게 불어와 우산이 똑바로 펴졌다.
"이제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준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머리가 다 젖었어요."
-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말하고 싶은데...
갑자기 비가 그쳤다.
어디선가 장미향이 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르면서 나는 향기였다.
엉킨 머리카락 사이로 리본이 보였다. 그녀는 리본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생일 선물처럼 보였다.
"어, 비가 그쳤네."
그녀가 손을 뻗어 빗방울이 더 떨어지지 않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 저 손을 잡고 뛰어갔으면... 어디론가... 자유롭게...
"손수건 어떡해요. 저 때문에 더러워져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때마침 커피 트럭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커피라도 한 잔 사 드리고 싶은데."
"괜찮아요."
"커피 안 좋아하세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여기 계시면 제가 사 올게요. 뭘 좋아하세요?"
"전,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요."
그녀가 비에 젖은 채 햇살 사이로 달려갔다. 비에 젖은 머리칼과 옷이 햇살에 마르면서 반짝반짝 휘발되는 물방울들이 꼭 오로라처럼 보였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오늘 감사했습니다."
-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하지.
"저 오늘 생일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제 생일 파티에 놀러오실래요?
"네?"
"식당에서 할 거예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 뭐라 말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생일 초대를 해 버렸어.
"지금 사실 가던 길이었는데, 혹시 많이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사실 친한 친구가 별로 없어서요."
"...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 드릴게요."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벤치 위 유리 천장에 빗방울들이 고여 있었고 나뭇잎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저 죄송한데, 담배 한 대만 피워도 될까요?"
"그러세요."
남준은 담배를 피우면서 어디 가서 밥을 먹을지를 생각했다.
- 아무도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서두르지 말고 바라만 보면서 그녀와 함께 걸어가
나의 마음 속의 그 진실을 그녀가 알아 줄 때까지
- 안단테 「에세이」 중에서
남준이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ㅇㅇ동 ㅇㅇ카페요."
그녀는 무릎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남준아."
친구 녀석이 그녀를 슬쩍 보고서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 가끔 사진 보여 주던 그 사람이네.
"다른 애들은 늦는다고 연락 왔더라."
"그래? 그렇구나."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괜찮아요, 좀 전에 커피 마시고 왔거든요."
남준은 테라스에 위치한 작은 탁자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귀여운 빈티지 유리 맥주잔에 빨간 장미가 한 송이 꽂혀 있었다.
빨간 장미, 리본을 맨 여자아이.
"이거라도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그냥 서비스예요."
미니 생크림 케이크와 작은 초 하나, 홍차 두 잔.
"감사합니다."
친구 녀석이 초에 불을 붙였다.
"애들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우리끼리 놀고 있자."
친구 녀석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무슨 소원을 빌지...
남준이 촛불을 후 불어 껐다.
- 그녀랑 결혼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 제발요.
그녀가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사실 제가 먹으려고 샀던 건데, 선물 드릴 게 없어서 이거라도..."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그려진 틴케이스에 담긴 레드체리 초콜릿.
- 여기가 밤이 되면 이 풍경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 시간 가량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새끼들 언제 오는 거야? 전화 좀 해 보고 올게."
그녀는 멍하니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에 젖은 회색빛 거리를.
"몇 명은 갑자기 특근을 해야 해서 못 온대."
"그렇구나."
"우리끼리 그냥 놀자. 아가씨는 시간 괜찮으세요?"
"네? 예, 너무 늦게까지만 아니면요."
친구 녀석이 기타를 꺼내 왔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갑자기 손님들이 열댓 명 들어왔다.
"여기 장사 안 하나요?"
"나갈까요?"
"네? 네."
지갑을 꺼내려는 그녀.
"괜찮아요. 진짜 서비스예요. 정 그러시면 다음에 또 오세요."
남준은 그녀와 함께 골목길을 걸었다.
"괜찮으시면 한강 공원에나 갈까요?"
"네? 네."
남준은 매점에서 치킨과 맥주를 샀다.
그녀는 오징어땅콩과 맥콜을 샀다.
한강 공원 벤치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남준은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 그녀는 말 없이 음료수를 마시며 오징어땅콩을 먹었다.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저 이제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가요. 같은 아파트니까."
"사실 전 그 아파트에 안 살아요. 그냥 근처에 살고 있어요. 아는 사람 집에 잠깐 들렀던 거였어요."
"어쨌든요. 같이 가요."
같이 아파트로 돌아갔다.
내리니 밤이었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몇몇 집들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고 어두컴컴하다.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서 같이 식사라도 하실래요?"
"네? ... 죄송한데, 오늘 처음 뵌 분 집까지 가기는 좀 그런 것 같아요."
"사실은요,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사실은요, 같은 대학교였어요."
남준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