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김제동 「그럴 때 있으시죠?」
제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런 거 잘 안 하는데요. 그냥 가끔씩 눈으로만 읽어요. ‘눈팅’이라고 그러대요. 여러분도 가끔 그럴 때 있으시잖아요. 제가 눈팅을 하다가 누군가 영화 평점을 캡처해서 올려놓은 걸 보았는데, 평점이 10점이더라고요. 평점이 왜 10점인가 봤더니, 이유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아주 단순했습니다.
“너랑 봐서 좋았어.”
이 글을 쓴 사람이 여자분인지, 남자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쓸 때 그분의 표정, 그분의 마음, 이런 것들이 아주 깊이 느껴지더라고요.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썼을까 싶더라고요.
(중략)
“너랑 봐서 좋았어.”
이 말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고,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영화를 봐도 평점 10점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어떤 일을 겪어도 함께 있으면 좋았을 그런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봐주고 일상을 공유해주고…… 우리가 그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광화문에서, 팽목항에서 이제 어떤 영화를 봐도, 어떤 일을 겪어도 옆에 없는 사람들 때문에 힘겨울 그들을 위해 여러분이 함께 영화를 봐주시고, 밥을 먹어주시고, 그들의 일상에서 그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리고 여러분이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끝없는 위로를 퍼부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평점 10점짜리 영화를 늘 보시는 여러분이 되길 깊이깊이 기도하겠습니다.
김제동 [그럴 때 있으시죠?] 중에서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읽지 않았었다.
김제동 님을 싫어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편이고(베드로?) 한때 김제동 어록도 찾아보고 했었으나, 이런저런 감성 에세이들이 나는 싫었고 SNS에 떠도는 얄팍한 위로들이 싫었기에 김제동 님의 책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동생...과 싸웠다고 하기는 그렇고 약간 꾸짖고 나서, 미안한 마음과 동생이 혼자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김제동 님의 근작 '내 말이 그 말이에요'와 만화로 읽는 논어를 선물로 보냈다.
유튜브를 자주 보지는 않고 간간이 정말 심심한 날 보는데 오랜만에 들어가 본 이경규 님 채널에 김제동 님 출연 영상이 있길래 봤고(난 텔레비전을 원래 잘 안 보다 보니 제동 님이 그렇게 오래도록 방송을 쉼'당했'는지도 몰랐다) 동생에게 책을 선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자 제동 님의 책이 좋겠다 싶었다.
안 읽어 본 책이지만 제동 님을 믿고 선물했는데, 그래도 나도 읽어 보는 게 좋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찾아봤더니(...) 근작은 없었는데 예전 책인 '그럴 때 있으시죠?'가 있어 빌려서 읽었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니고, 89% 읽었다고 한다.
읽으면서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제동 님 음성이 지원되는 것 같아 어설픈 경북 사투리로 부분 낭독을 해 개인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이 책을 발간 당시에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나도 참 많이 아팠던 그때. 지금은 많이 아프지는 않다. 정말 많이 아프고 나서 오히려 많이 낫기도 했다. 아픈 걸 회복하면서 그 전에 아팠던 것들까지 회복이 되었다. 요즘에는 아프지는 않은데, 아프지 않은데 상담(은 아니고 사내 면담이지만)을 하려니 오히려 더 아파지는 느낌도 들었다. 뭔가 얘깃거리를 꺼내야 하니까. 할 얘기 없어요 해도... 내가 얘기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다음부터는 정말 괜찮다 하고 싶다.
(사실 정말 괜찮지는 않은데,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 뒷담화도 안 하고 싶어서 그렇다.)
동생도 김제동 님의 책을 읽고 웃고 울고 했을까.
그랬다면 다행이다. 그러면서 낫기를, 나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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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고서 인스타에도 올리려고 이미지 공유로 문장 이미지를 넣고 내가 몇 마디를 덧붙였는데, 블로그는 누가 읽을지 안 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혼자 막 쓰는 거고 인스타는 아는 사람들이 본다는 전제하에 쓰는 거라 그런지 다른 글이 써져서 여기에도 붙여 둔다.
제동 님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울었는지... 가장 슬펐던(?) 부분은 이 책이 나온 게 10여 년 전인데 그 당시에 아빠가 되고 싶다고 쓴 게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 이 부분 쓰다 또 눈물이 나는데, 아버지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도 아빠가 되고 싶다 ... 실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엄마이자 아빠였다- 이런 글이었다.
글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 진심이 담겨 있고 그 진심이 참 따스하고 좋은 김제동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어서, 읽는 내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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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치매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 엄마와 이모가 낮밤 번갈아가며 외할머니 댁에 가 계시는데, 밤 8시쯤 엄마에게서 이제 집에 간다며 잘 자라고 메시지가 왔기에 엄마 저는 책 읽고 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면서 내가 인스타에 이미지로 공유한 문장들 세 장을 보냈다.
제동 님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울었는데, 제동 님의 글과 마음이 참 좋고 공감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 아버지도 중공업 회사 및 벌목 일 등을 하다 산재당해서 입원한 게 세 번 정도 되고, 우리 엄마도 동생들 공부시키고 하느라 정작 본인은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기도 했고, 뭐 그래서 김제동 님의 가정사를 읽으면서도 내 일 같고 눈물 나고 그랬던 것 같다.
이미지 공유한 부분을 읽고 생각했던 건, 그러고 보니 나도 누군가와 같이 영화 보는 거 참 좋아하는데 하는 거였다.
고 3 때 영화는 보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다들, 공부해야지 무슨 영화야 했었다) 혼자 영화관에 갔던 뒤로, 혼자 가는 것도 괜찮네 싶어 거의 늘 혼자 갔었다. 간간이,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본 적이 많지 않아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위에 외할머니 얘기를 썼지만, 외할머니랑 엄마랑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택시 운전사'를 봤었다. 극장 내에서는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해야 하는 영화관이었는데 외할머니는 연세가 있으시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무서워하셔서 직원 분께 부탁해서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탔었고, 영화를 보며 두 분 다 참 많이 우셨다. 나는 두 번째 보러 간 거였어서(혼자 본 뒤 모시고 갔던) 많이 울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외할머니, 엄마하고 같이 영화를 본 적이 두 번인데 또 한 번은 부산을 배경으로 한 범죄 경찰 코미디 영화였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 내용이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아니었고 그냥 웃음 유발 포인트가 많은 영화였는데, 아마 부산이 배경이어서 친근한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무슨 영화를 봐도 평점 10점을 주게 되는 그런 영화, 누구와 보느냐에 따라서.
가장 최근에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사촌 오빠, 동생들하고 동네 CGV에서 봤던 관상인 것 같긴 한데.
10살 차이 나는 막내 동생과는 종종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곤 했었다. 내가 20대 때 초등학생이었던 터라, 방학 때 집에 내려오면 알바한 돈으로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곤 했었다.
며칠 전에도 혼자서 영화를 봤고, 팝콘 들고 들어오는 커플들을 보면서도 별 생각 없었는데, 제동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나도 같이 영화 볼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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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마저 읽으며 사드 연설 전문을 읽는데,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창원에서 했던 박근혜 씨 탄핵 집회 때 제동 님이 오셨었던 게 생각났다. 사진도 찍었었는데 내가 사진 및 블로그를 하도 없애 버릇하여 남아 있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