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옥상의 고양이 (지은이: 나; 주예린)

Yerin216JOO 2025. 3. 5. 22:47

옥상의 고양이


                                                                                                                 - 주예린 지음

 


그 여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나갔다가 그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누렇고 뚱뚱한 고양이였다.
나랑 비슷하다. 누렇고 뚱뚱한.
내 피부가 누런 건 황인종인데다 선크림을 안 바르기 때문이고 내 이가 누런 건 골초이기 때문이고 내 배가 나온 건 밤마다 라면을 먹고 자기 때문이다.
그 고양이가 누런 것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일 테고, 뚱뚱한 건, 글쎄. 그 여자가 뭔가 먹을 걸 주는 모습은 아직 본 적이 없어 녀석이 뭘 먹는지 모르겠다. 고양이가 뭘 먹고 사는지 난 잘 모른다. 설마 쥐를 먹지는 않겠지.
누뚱이(편의상 내가 붙인 이름이다. 발음에 주의하지 않으면 늦둥이처럼 들린다.)는 평소에는 집에 들어가 잠만 자는지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옥상 구석에는 녀석의 집과 밥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가끔 그녀의 빨래가 바람에 가벼이 나부낄 때면 꽤 괜찮은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옥상과 나의 옥상은 꽤나 가까워 옥상에 그녀가 있으면 난 언제나 다른 곳을 보며 담배를 피운다. 그녀도 아마 담배 피우는 남자를 싫어하겠지. 싫어하진 않더라도 어쨌거나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녀와 내가 가까워질 확률은 잘 모르겠고 내가 담배와 멀어질 확률은 아주 낮으므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가끔 누뚱이 혼자서 옥상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는 누뚱이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데 연기가 바람을 타고 그쪽으로 넘어갈 때면 녀석은 흠칫 놀라곤 한다. 처음에는 내가 문을 열고 나타나기만 해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집으로 뛰어들어가던 녀석이었는데, 이제 익숙해졌는지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듯하다. 아니면 내가 자기와 비슷한 부류라는 걸 알아차렸는지도 모르지.
햇살 좋은 봄날에 하릴없이 옥상에서 어슬렁거리는 누렇고 뚱뚱한 존재.
이렇게나 비슷한데 왜 녀석은 귀여움을 받고 나는 아닌 것일까. 기이한 일이다.

옥상에 널어 뒀던 빨래에 또 담배 냄새가 배 있다.
옆집 남자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옥상에 올라가면 나름 구석에 가서 피우긴 하던데, 내가 안 보이면 그냥 돌아다니면서 피우겠지.
사람이 넘어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담배 연기가 못 넘어올 리 없다. 혹시 우리 집 옥상에서 피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렁이의 털이 갈수록 더 누래지는 게 그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탈취제를 뿌리는 것도 귀찮다. 누가 웬 담배 냄새냐고 하면 남자친구가 담배 피우면서 빨래를 널어서 그렇다고 말해야지. 사람들은 의외로 '이걸 믿어?' 싶은 것들을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