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기

 


                                          - 주예린 지음

 



보랏빛 마른 바람이 얼굴을 따갑게 스쳐가고
한 호흡 숨결에도 푸른 흙이 부서지던
작고 야윈 별에서
여우 한 마리를 만났어

금빛이 뭉텅 날아간 듯
희뿌연 은색털이
바람에 조용히 움직였고
은여우는 커다란 눈을 깜박거렸어

손을 뻗어
그의 털을 가지런히 쓰다듬자
흰 이빨을 살며시 드러낸 그가
물었어

피부가 일어나 거칠어진 손에서
붉은 피가 몇 방울 흐르자
그가 물었어

아프니?
마녀의 수정구슬 박은 듯 큰 눈을
가만히 뜬 채 바라보며
그가 물었어

갈라 터진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어

그가 아직 털이 풍성한 꼬리를
내밀어 내 손에 부볐어

그의 은빛 털에
내가 붉게 스며들었고
내 피에는
부옇게 눈 시린 은빛이 묻어났어


대학생 때 수업 과제로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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