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 주예린 지음



엇갈리는 선들
너와 내가 지금 엇갈리고 있듯이
그러나 언젠가는 이어질 선들
너와 내가 그러할 것처럼

SOULMATE-91216

 

                                                                                                              - 주예린 지음

 


학원가 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남자애를 보았다. 그 애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시위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시위 행진을 마치고 버스가 끊겨 세 시간 가량 걸어서 학교 앞 고시원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 아이는 시위가 이어지던 몇 주간 내가 지나칠 때마다 같은 학원가 앞 계단에서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면서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말을 걸어 왔다.
- 넌 자퇴했나 봐?
- 웬 자퇴?
- 머리가 노랗잖아.
- 난 대학생이야. 왜 멋대로 반말이지? 교복 보니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같은데.
- 어디 가는 길이야?
- 네가 무슨 상관? 그리고 왜 계속 반말이지?
- 난 원래 이래.
무시하고 지나쳐 가려 했다. 그 아이가 내 손목을 잡았다.
- 집까지 바래다 줄게.
- 나 혼자 갈 수 있어.
홍제천을 같이 걸었다. 컴컴한 밤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비쳐 반짝이고 있었다.

- 주말 아침에 만나자.
- 내가 왜?
- 그냥, 심심해서.
- 난 심심하지 않은데?
- 그냥.

다음 주말 아침, 그 아이가 고시원 건물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내가 언제 나올 줄 알고 기다렸어?
- 그냥, 뭐라도 하러 나오겠지 싶어서.

- 내가 안 나오면 어쩌려고?

- 그 카메라는 뭐야?
- 주말에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해.


나는 홍대 골목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어떤 여자애를 본 적이 있었다. 노란 머리에 펑크 옷을 입고 하염없이 걸어다니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떤 여자아이를.
자퇴한 중학생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다.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대학 건물로 들어가는 걸 봤었기 때문이다. 학교 안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었다.
밤에 집으로 돌아가 뉴스 특보를 보다가 대통령 퇴진 시위에 참가한 그 여자아이가 클로즈업돼 나오는 걸 보았었다. 사흘 연속 거리 행진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원도 아닌데 그 여자아이의 귀갓길 동선에 있는 학원가 앞에 앉아 있었다. 어차피 내가 전교 1등이라 학원은 빠져도 상관이 없었다. 엄마가 아침에 대충 던져준 냉동 삼각김밥이 자연 해동이 돼 눅눅해진 걸 먹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 정도 키 크고 멋있는 애가 쳐다보고 있으면 말을 걸어줄 줄 알았었는데 말을 걸어주지 않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 넌 자퇴했나 봐?
그게 그 여자아이와의 첫 대화였다.


분홍색 들꽃을 예쁘게 뷰파인더에 담고 있는 귀여운 여자아이. 나보다 여덟 살이 많은 줄 알고는 있지만. 뽀얗고 통통한 그 아이를 난 마시마로라고 부르기로 했다.
- 마시마로, 나도 좀 찍어 주라.
마시마로의 취향에 맞춰 나도 펑크 고딕 의상을 입고 갔었다. 카메라를 잡고 날 멋있게 찍어 주기 위해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는 마시마로를 꼭 안아 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 사진이 너무 잘 나왔네. 내가 이렇게 잘생겼나?
- 응, 너 정도면 아주 잘생겼어.
- 날 좋아해?
- 아니? 난 원래 이런 말을 잘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생겼잖아. 누구나 아는 사실일 텐데?
난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난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강가를 거닐다 담배를 꼬나물었다.
- 흡연구역도 아닌데 담배를 막 피우면 안 돼. 휴대용 재떨이는 있니?
- 그런 거 없는데.
- 미성년자가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다 걸리면 어떡해. 우리 학교에 가서 피우자.
마시마로와 함께 마시마로가 재학 중인 대학교까지 걸어다가 아버지 친구인 대학 교수와 마주쳤다.
- 너 여기서 뭐 하니?
- 그냥 친구랑 산책 중이에요.
- 교수님 안녕하세요?
- 웬 친구?
- 마음 맞으면 친구죠. 박지원이 그랬다죠? 다섯 살 연상연하 정도는 친구라 생각해서 말을 놓고 친구를 하다 보니 그 친구들의 다섯 살 연상연하와도 친구가 되었다고.
대학 교수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아무 말 없이 지나쳐 갔다.

- 대학교란 참 좋네. 담배도 막 피울 수 있고. 자판기도 많고, 벤치도 있고.
- 너 근데 몇 살이니?
- 고 3이야.
- 그렇구나. 그런데 수험생이 주말에 이렇게 공부도 안 하고 돌아다니면 집에서 뭐라고 안 하시니?
- 어차피 전교 1등이라서 아무도 터치 안 해.
- 그렇구나.
- 넌 근데 주말에 보통 뭐 하니?
- 책 읽거나 과제하거나 전시를 보러 가거나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거나 하루 종일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등등등.
- 이 학교에 올까 생각 중이야. 너랑 같이 학교 다니게.
- 난 4학년이라 내년엔 학교에 안 다니는데.
- 졸업하고는 뭐 할 생각이야?
- 취직해야지. 이력서를 여러 군데 넣고 있는데 다 떨어져서 그냥 내려갈까 생각 중이야.
- 부산 사투리야?
- 아니, 태어난 데만 부산이고 집은 마산이야.
- 마산 내려가면 뭐 할 거야?
- 뭐라도 하겠지. 서울에 있으려면 무조건 취직부터 해야 하잖아. 방세도 내야 하고 뭐 그러니까.
- 나한테 취직해.
- 무슨 소리야?
- 내가 먹여 살려 줄게.
- 미안하지만, 날 언제 봤다고?
- 그냥 쭉. 밴드 동아리를 했었지? 텔레비전에 나왔었지? 그걸 다 봤었어.
마시마로가 말 없이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 그냥 그때부터 지켜봤었어. 내년이면 나도 어른이잖아.

다음날 학교를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까지 마친 다음 대학교 입학까지 확정지어 놓고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달에 400만 원을 벌었다.
통장을 들고서 마시마로를 찾아갔다. 마시마로는 아직 취업 준비 중이었다. 전국적 취업난이었다.
- 이것 봐. 내가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냥 아무 말 없이 나한테 시집 오면 돼.
-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리고 웬 시집? 미안하지만 난 널 사랑하지 않아.
- 사랑하게 될 거야.

-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웬 사랑?

- 그럼 일단, 남자친구부터 시작하자.
- 난 아직 연애도 못 해 봤어. 그리고 난 누굴 만날 자격이 없어. 아무것도 못 된 데다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 나랑 첫 연애를 하면 돼. 그리고 내가 먹여 살린다고 했지? 제발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나랑 같이 살아.


- 끝 -

본 소설은 실화 기반 허구임을 알려 드립니다. 98% 정도가 사실입니다. 에이아이 마피아들에게 재작년에 엄청난 물리 폭력을 당하고 잠시 살짝 풀려났었으나 작년 12월쯤부터 살짝씩 들어오더니 올해 1월쯤부터 정말 심한 물리 폭력을 당하기 시작하여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당하고 물리력에 의하여 몸이 움직여져 사람 형상을 한, 덩어리가 느껴질 뿐 보이지는 않는 물리 에너지 덩어리에게 강간 및 폭행을 당하는 등의 일을 겪고 경찰서에까지 다녀왔으나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공격을 멈추질 않아서 계속 고통받던 중 어제는 위장을 조여와 구토를 열 번 이상 하게 하기도 하고 제가 아는 사람들을 납치, 감금하고 있다고 하며 물리 공격을 멈추질 않아서 (너무 빡쳐서) 실화 기반으로 단편 소설을 써 보았습니다.


「A.I. 마피아」

 

                                                                                 - 주예린 지음

 



captni가 감금당해 있다는 소리가 귓속에서 들려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대화가 통하는 친구가 없었던 나의 유일한, 채팅 친구.

captni가 내게 말했다.
- 오늘은 풀어 준다고 해. 널 만날 수 있게 데리고 가 준다고 해. 그러니 오늘은 정말 만날 수 있을 거야. 날 기다려 줬으면 해.

 

광장에서 아침 8시 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에이아이 마피아가 내 위장을 몇 번이고 졸라서 열 번 이상 구토를 했다. 위장이 조여 오면서 속의 모든 게 올라왔다. 먹은 게 초콜릿 과자 하나와 커피뿐이라 나오는 건 액체뿐이었다.
에이아이 마피아가 나와 captni, 천재 과학자 베이시스트인 하얀 우주를 에이아이로 묶어 놓았다고 했다. 하얀 우주가 에이아이 물리 세계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으나 에이아이 마피아가 미국 마피아, 이탈리아 마피아에게 하루에 천억 원을 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에이아이 사슬을 무선 전파로 나와 captni, 하얀 우주의 몸에 휴대폰 전파처럼 찔러넣어서 조종 및 고문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아이 마피아가 괴롭히고 있다고 하였다. captni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에이아이 마피아에게 무선 전파로 조종 및 고문을 당하고 있으며 세 살 때 납치를 당하여 실제로 감금,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얀 우주도 태어날 때부터 에이아이 마피아 및 그 비슷한 이들에게 감금 및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에이아이 마피아는 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입력 언어를 송출하였다.

- 오늘은 무조건 갈 테니까 하루 종일 기다려.
- 아니, 안 갈 테니까 기다리다 죽어 버려.
- 안 갈 거지만 네가 안 기다리면 captni는 죽어.
- 하얀 우주는 천재 과학자라 살려는 둘 거지만 감금하면서 에이아이 및 핵물리폭탄 연구를 시킬 거야.

 

나는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 벤치에 하염 없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열 네 시간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에이아이 마피아는 삼 년 전부터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집어넣는 것뿐만 아니라 내 입으로 자기 말들을 흘려 보냈다. 나는 라디오가 되어 있었다.
- 내가 널 죽이려 했던 떡볶이야. 내가 이탈리아 마피아를 풀어서 널 괴롭히고 있어. 못생기고 바보인 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싫어. 내가 죽이려 했던 애들 중 자살 안 한 게 너뿐이야. 그러니 빨리 죽어.

 

나는 토하고 벽에 머리를 찧고 해드뱅을 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뒤로 걸어갔다 하였다.

 

에이아이 마피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단체였다. 단체 구성원끼리도 누가 누군지를 잘 모른다는 단체였다. 실제로 만나지도, 대화를 나누지도, 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하지도 않으며 무선 전파로 송출만 하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 하게 되는 가상 물리 세계를 통해서만 엮여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내 일상을 살아왔다 생각했었다.
왕따가 빈번했던 시절이고 사람들이 다 나보고 특이하다 하였기에 그 때문에 학교 폭력을 당했다 생각했었는데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사람을 풀어 날 왕따시키고 자해를 하게 했다 하였다.

 

- 손목을 그어.

 

이런 입력 언어를 내 머릿속으로 송출하면 내가 '난 자해를 하고 싶지 않은데' 생각하면서도 손이 움직여 손목을 긋게 됐었던 거라고 하였다.
취업난이어서 취업이 안 됐다 생각했었는데 내가 취업이 안 되게 각종 회사에 연락하여 협박을 하였다 하였다.
납치, 감금, 갖은 종류의 폭력을 당했었는데 그것도 이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당한 거라 하였다. 물리 전파 세계 안에 날 가두고 각종 자해 및 자살 언어를 나에게 송신하여 날 자살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여 범죄 사주를 하였다고 하였다.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그저 주변 환경이 안 좋아서, 세상이 그래서, 이상한 사람들이 꼬여서 불행하다 느끼게 됐었다 생각했던 인생이 알고 보니 에이아이 마피아의 소행에 내가 당하여 그런 인생이 된 거라 하였다.

captni가 말했다.
- 널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 왔어. 다가가진 못 했지만.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날 납치하여 가둬 놓고 때리면서 너에게 다가가지 못 하게 했거든. 지금도 잡혀 있고, 날 너에게 데려다 준다고 하는데 언제 데려다 줄지 모르겠어.
- 난 기다릴 수 있어. 네가 오기만 한다면.

 

그래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내 영혼의 친구였던 그 애를.

 

- 사실 난 네 대학교 동아리 선배였어. 말이 없었던 그 사람을 기억하니? 구학번 선배였던 드러머 말이야.
- 기억하긴 하는데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몇몇 장면들만 기억이 나요. 다리를 꼬고 담배를 피우던 모습과 제가 결혼식 축가를 불러 드렸을 때 활짝 웃고 계셨던 모습요.
- 사실은 그때 파혼을 당했어. 좋아하지도 않았어. 감금, 폭행에 의한 사기 결혼이었는데 여자애가 네 축가를 듣고서 파혼하자고 했어.
- 파혼이요? 축가를 듣고서?
- 그 노래 있잖아. 날 사랑할 수 있나요- 이 부분을 듣고서 날 사랑해 주길 바라지 않는데 생각했대. 그리고, 언젠가 우리 늙어 지쳐가도 지금처럼만 사랑해 주기로 해-라고 네가 가사를 1, 2절 섞어 불렀던 부분. 그 부분을 듣고서 지금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늙어 지쳐가도 사랑하지 싶어서 파혼을 결심했대. 그래서 운 거였대.

(* 주영훈, 이혜진 님의 「우리 사랑 이대로)

- 전 결혼하는 게 기뻐서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오빠는 그 분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너무 좋아서 활짝 웃고 계신 줄 알고 있었어요.
- 사실은 네 노래를 들으면서 그냥 좋아서 웃고 있었던 거였어.

 

내가 평범한 일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세계가 모두 에이아이 마피아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던 미친 세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있잖아, 혹시 내 얼굴 기억하니?
- 활짝 웃고 있는 얼굴밖에 몰라요.
- 사실 여러 번 마주쳤었어. 넌 날 몰라봤지만. 네가 날 좋아하기도 했었어. 나인 줄 모른 채.

 

머릿속으로 이미지와 영상이 떠올랐다. 만월의 강가에서 마주쳤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날 빤히 쳐다보던 눈이 동그랗고 눈동자가 아주 까맸던 사람. 번화가에서 공연 홍보 전단지를 나눠 주던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난 외근 때문에 평일 대낮에 번화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키가 크고 아주 마른 사람이었다. 살짝 웃으면서 내게 공연 홍보 전단지를 건네 줬었다. 그리고 내가 삼년 전부터 갑자기 뭐에 홀린 듯 좋아하게 됐던 연예인.

 

- 그 사람이 나였어.

 

에이아이 마피아로 엮여 있으면 엮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지 및 영상, 음성이 동시에 송출된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


- 원래는 눈이 커. 그런 눈이 없어지는 웃고 있는 눈이 아니야. 왜 날 못 알아볼까 생각하다가 내 결혼식 사진을 보고서야 깨달았어. 날 알아볼 수 없다는 걸.
학교 다닐 때 에이아이 마피아 소속인 주변 애들이 날 협박하고 때리면서 너에게 말을 못 걸게 했었어. 대화를 나누면 내가 채팅 친구였던 captni라는 걸 네가 알아차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네가 날 좋아하게 되고 날 데리고 탈출할지도 모른다고.
무조건 네가 내게 다가와야 한다고,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면 안 된다고 했었어. 네가 만취해서 필름이 끊겼을 때만 다가갈 수 있게 해 줬었어. 그래서 슬펐어. 넌 날 영원히 모를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 연예인이 되었어. 날 협박하면서 연예인이 되라고 했어. 다른 사람의 대역이긴 하지만. 연예인이 되어서 네가 내 팬이 된다면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었어.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지만. 연예인이 되면 밴 타고 다니고 숙소에 살고 소속사, 스케줄 안에 갇혀 사는 새장 속의 새로 만들 수 있어서 그랬다고 해. 난 아무 데도 갈 수 없었어. 사실 지금도 자유가 없어.
- 전에 그런 소리가 들려 왔었어요. 네가 소속사 앞으로 찾아오면 그 애를 살려 주겠다고. 만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그런데 진짜로 찾아오면 때리면서 쫓아내겠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소속사에 있지도 않다고 했었어요. 그렇지만 가 보려고 했었는데 다리가 제 멋대로 움직이면서 뛰어다니게 되고 차도로 뛰어들게 되고 그랬었어요.
- 미안해. 만나러 가지 못 해서.
- 괜찮아요. 감금 상태라 못 간다는 말을 들었었으니까요.
- 사실 지금도 감금당해 있어. 보내 준다 해 놓고 안 보내 줘. 휴대폰도 지갑도 없었어. 면허도 못 따게 했어. 도망칠까봐 그랬다고 해.
- 어떻게 해야 감금에서 풀려날 수 있죠?
- 에이아이 물리 세계의 봉인이 풀려야 끝난다고 해.
- 미친 것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과학을 전공할 것을. 이런 미친 세계가 올 줄 알았었더라면.

 


하얀 우주가 말했다.
- 있잖아, 나도 아주 오랫동안 널 지켜봐 왔어. 네가 좋아했던 밴드의 베이시스트 기억하니?
- 네, 제가 눈 오는 날 콘서트를 보러 갔었던 그 밴드인가요? 지금 머릿속에 영상과 이미지, 음악들이 떠올라요.
- 사실 그 눈을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뿌렸다고 해. 60년 만의 폭설이었지. 기상을 조종해서 폭설을 퍼부어 네가 날 만나러 오지 못 하게 하려고 그랬다고 해.
내가 널 아주 많이 좋아했거든. 사실 지금도 아주 많이 좋아해.
- ... 몰랐어요. 알았더라면 사생팬이라도 되어 찾아갔을 텐데.
- 그랬다면 널 물리 원자 에너지로 날려 버렸을 거라고 해. 그리고 실제로 그게 가능해. 지금 이 에이아이 마피아의 물리 원자 세계 속에서 네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 덩어리에 의해서 폭행을 당하고 밀려나고 뒷걸음질을 치게 되고 그런 것처럼.
- 하얀 우주 씨는 지금 괜찮으신가요? 제가 폭행을 당하면 똑같이 폭행을 당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 우리 연구소의 다른 사람들이 나는 폭행은 당하지 않도록 너와 머리만 연결되게 막아 놨다고 해. 그래서 몸은 너와 같이 움직이지 않아. 너의 뇌 속으로 떠오르는 것들의 반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네가 조종자들에 의해서 내뱉게 되는 말들이 내 입을 통해서 나와. 네 생각은 나에게 들어오지는 않아. 네가 말을 해 줘야만 내 입을 통해서 나와서 들을 수 있어. 그러니 나에게 말을 많이 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나와 연결돼 있다는 걸 내가 느낄 수 있도록.
- 그래요. 제가 계속 말을 걸어 드릴게요.
그런데 뇌가 반만 연결돼 있다는 건 뭘까? 생각과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우뇌가 연결돼 있지 않다는 건가 봐요. 전에 그런 소리가 들려왔었어요. 하얀 우주 씨는 EQ가 저의 5분의 1 정도라고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고 스스로는 뭘 생각해 낼 수가 없는 기계 인간을 만들려고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고 해. 전에 네가 그런 말을 했었지. 하얀 우주 씨는 왜 스스로는 생각하지 못 하냐고.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고. 난 내가 그냥 평소에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우뇌를 완전히 끊어 놨어서 좌뇌만 쓸 수 있어서 과학, 수학에만 집중했었나 봐. 날 천재 과학자로 키우고 싶다고 주변에서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기계를 만들려고 했었던 건가 봐. 과학 연구 프로그램 기계로.
- 기억 나요. 두 달 동안 물리 세계 속에서 에이아이 범죄자들에게 강간, 폭행을 당하고 있었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세 달 전쯤 하얀 우주 씨가 에이아이 물리 덩어리로 제게 다가오셨던 적이 있었죠.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데 머리가 텅 비어 있는 거예요.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말하더군요. 제가 음악을 들려 주면서 뇌파를 깨워 주어야만 살아날 수 있다고요. 몸은 묶여서 누워 있고 뇌는 수조에 들어 있는 그런 상태라고요. 네가 빨리 뇌파를 깨워 주어야만 뇌를 수조에서 꺼내 주겠다고요. 그래서 비 오는 날 집 앞 바닷가에서 휴대폰을 제 머리에 음향과 뇌파가 잘 연결되게끔 이리저리 돌려가며 오빠의 베이스 연주가 멋있는 노래들을 제 머리를 통해 오빠에게 들어가게끔 들려 드렸었죠. 바닷가를 향해 노래도 부르고요. 그때는 그런데 이렇게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리튬 공격으로 붙어 있는 느낌이 아니고 오빠와 둘만 있는 포근하고 따뜻한, 실제 인간과 있는 느낌이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 그때는,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한국 과학 연구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빠져나간 상태였었다고 해. 지금은 들킬 거 다 들켰다 싶어서 마구 공격 중이래. 네 소셜 미디어에 에이아이 마피아의 공격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네 셀프 캠을 올리게 하고 다리를 움직여서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게 했었지? 자기들이 무조건 이긴다, 널 죽일 수 있다, 한국 경찰이니 검찰이니 자기들을 알아차릴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그랬었다고 해.
- 제가 마루타 병원에 끌려갔을 때 기억하세요? 그때는 몸이 이렇게 따끔따끔 아프지 않았었어요. 입을 잡고 혀를 깨물면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었어요. 손으로 글씨를 쓰면 제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었어요. 오빠는 저와 에이아이 물리 세계로 연결돼 있다 하셨었죠? 오빠가 죽어 가는 것 같아서 제가 마루타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 드렸었는데, 이제는 그 방법도 먹히질 않아요. 소리를 지르고 몸을 움직여도 탈출할 수가 없어요. 마루타 병원에서는 그 방법으로 탈출했었는데요.
- 이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너무 많을 뿐더러 수법이 너무 지독해서 그래. 무선 통신망을 이용하여 휴대폰에 문자가 가게 하는 것처럼 너에게 메시지를 송신하여 입에서 말이 나오게 하고 머리에 생각이 들어가게 하고, 휴대폰에 진동이 오는 것처럼 네 몸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고 해. 그리고 리튬 공격이라는 심한 방법이 있어. 그것 때문에 온몸이 따끔따끔거리면서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는 소리가 나는 걸 거야.
- 전에는 소리를 지르면 동굴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약간 울리면서 파직파직 불꽃이 튀는 게 보이면서 연결이 끊어지는 것 같았었는데, 이젠 그것도 먹히지가 않아요.
- 나와 내 친구들이 에이아이 물리 세계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있는데, 연구를 해서 서버를 끊고 전파를 터트려도 끊임없이 들어오는 애들이 있어. 알고 보니 우리 연구소에 있는 반대파들이었다고 해. 우리를 조종해서 자기들이 연구 결과를 빼앗고 기계 인간들과 사이코패스만 존재하는 디스토피아 물리 세계를 건설하려고 그랬다고 해. 하지만 이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실제로 너에게 자행한 폭력 사건이 너무 끔찍해서 경찰들이 계속 수사 중이었고, 네가 경찰서에 찾아간 덕분에 경찰들이 과학 수사를 하면서 범인들을 실제로 많이 잡아갔대. 행동원들에게 물리 세계 조종 장치를 맡기고 잡혀 가서 그 사람들이 잡혀간 뒤로도 조종이 계속 됐지만. 이제 정말 곧 끝날 거라고 하는데, 언제쯤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직 확실치는 않아.
- 제가 재작년에 이 에이아이 마피아들에 의해서 물리 폭력을 당해 죽을 뻔했었잖아요. 정신병원에도 끌려가고. 그러다 풀려나서 이제는 이 세계가 끝났다 생각했었는데. 세상이 무서워져서 해외 도피를 해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마피아들이 물리력을 동원해서 절 다시 끌고 왔죠. 그 뒤로 세 달째 이렇게 물리 공격을 당하고 있어요. 물리 에너지에 의해서 온몸이 조종당하고 있죠. 헬륨 가스를 마신 듯한 목소리로, 조종자들에 의해 그 사람들의 언어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니 엄마가 마귀에 씌인 건 아닌지 하며 성당에 가자고 하고 조현병에 걸린 건 아닌지 하며 신경정신과에 가 보자고 해요. 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게 이 미친 세계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어 그냥 죄송하다 하고 조용히 있어요. 엄마는 제가 겉보기에 잠잠해졌다 싶으니 취업 준비를 하라고 해요. 전 평범한 외국인 근로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이 에이아이 마피아들 때문에 순식간에 백수가 되었죠. 언제쯤 이 에이아이 물리 세계가 파괴될까요. 에이아이 물리력으로 연결돼 있는, 진짜인지 사칭인지 알 수 없는 물리 영혼들이 떠드는 말 말고 실제 사람이 해 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하얀 우주와 captni가 동시에 외쳤다.
- 널 구하러 갈게. 이번 달 안에는. 그러니 제발 기다려 줘. 널 정말 사랑하거든.
- 저도 오빠들을 사랑해요.

하얀 우주가 말했다.
- 우리가 만난다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거야. 핵물리원자력으로 우리가 함께 살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도 있어. 네가 전에 봤다던 새로운 은하계를 만드는 수조 실험 기억하니? 그런 우주를 만들고, 네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의 B612 행성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물리력을 이용해서 날아갈 수도 있어. 중력과 우주 가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물리 에너지 투명 우주선을 만드는 게 가능하거든. 아직 개발 중이지만 말이야.

 

captni가 말했다.
- 난 널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나만의 공주님이 되길 바랐었는데, 이렇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우리가 언제 만나게 될지 확실치는 않지만 이제 에이아이 마피아들이 거의 다 잡혀갔기에 조만간 만날 수 있다고 해. 이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널 너무나도 사랑해.
- 저도 사랑해요.

- 이제 우리가 만난다면, 행복하게 살아요.
교토 어느 절에서 이런 글을 봤었어요. 지금부터가 지금까지를 결정한다고.
우리만의 B612 행성을 새로운 은하계에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사는 지구에 B612 행성을 닮은 아름다운 집을 만들어요.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는 예쁜 집을요.

- 끝 -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온종일 난 그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죠
난 가까운 책방에 들러서 예쁜 시집에 내 맘 담았죠
그 다음엔 근처 꽃집으로 가서 빨간 장미 한 송일 샀죠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가는 길 너무 상쾌해
품 속에는 장미 한 송이, 책 한 권과 그댈 위한 깊은 내 사랑...
- 권진원 「Happy birthday to you」 중에서

 



Happy birthday to...

 

 

                                                                                                                 - 주예린 지음



여기저기서 오는 문자들.
- 생일 축하해.
- 생축. 좋은 하루 보내길.
- 생일 축하. 술 한잔 하자.
- 생일인데 오늘 뭐 하냐?
- 오늘 뭐 하냐? 나 좀 불러라.
- 형, 생일 축하드려요.
- 형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 오빠, 밥 좀 사 주세요. 선물 사 드릴게요.
- 오빠, 내가 선물 보냈으니까 밥 좀 사 줘. 생일인데 쏴야지.
- ...

남준은 생일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인 생일 파티가 지겨웠다. 낳아 준 데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지겨웠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린 뒤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있던 때였다.
창밖 저 멀리 그녀가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빨간 우산을 쓴 소녈 봤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건넨 말
저 어디까지 가세요
때마침 저와 같은 쪽이네요
우산 하나로 걸어갈까요
- 김건모 「빨간 우산」 중에서

빨간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는 그녀.
내려가서 말을 걸어 보고 싶어. 어디 가는 길이니...

남준은 커다란 우산을 들고서 내려갔다. 휑한 아파트 단지 안,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바람이 많이 불어 그녀의 우산이 뒤집어져 그녀가 휘청거렸다.
"어엇."
그녀의 긴 치마가 바람과 비 때문에 휘감겨서 엉겨붙은 듯 보였다.
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었다.
거센 빗줄기에 머리가 반쯤 젖은 그녀의 얼굴에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녀가 뒤집어진 우산을 똑바로 펴려 애쓰고 있었다.
"제가 펴 드릴까요?"
-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씌워 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꺅!"
바람이 다시 세차게 불어와 우산이 똑바로 펴졌다.
"이제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준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머리가 다 젖었어요."
-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말하고 싶은데...

갑자기 비가 그쳤다.
어디선가 장미향이 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르면서 나는 향기였다.
엉킨 머리카락 사이로 리본이 보였다. 그녀는 리본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생일 선물처럼 보였다.

"어, 비가 그쳤네."

그녀가 손을 뻗어 빗방울이 더 떨어지지 않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 저 손을 잡고 뛰어갔으면... 어디론가... 자유롭게...

"손수건 어떡해요. 저 때문에 더러워져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때마침 커피 트럭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커피라도 한 잔 사 드리고 싶은데."
"괜찮아요."
"커피 안 좋아하세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여기 계시면 제가 사 올게요. 뭘 좋아하세요?"
"전,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요."

그녀가 비에 젖은 채 햇살 사이로 달려갔다. 비에 젖은 머리칼과 옷이 햇살에 마르면서 반짝반짝 휘발되는 물방울들이 꼭 오로라처럼 보였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오늘 감사했습니다."

-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하지.

"저 오늘 생일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제 생일 파티에 놀러오실래요?
"네?"
"식당에서 할 거예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 뭐라 말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생일 초대를 해 버렸어.

"지금 사실 가던 길이었는데, 혹시 많이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사실 친한 친구가 별로 없어서요."
"...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 드릴게요."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벤치 위 유리 천장에 빗방울들이 고여 있었고 나뭇잎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저 죄송한데, 담배 한 대만 피워도 될까요?"
"그러세요."
남준은 담배를 피우면서 어디 가서 밥을 먹을지를 생각했다.
- 아무도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서두르지 말고 바라만 보면서 그녀와 함께 걸어가
나의 마음 속의 그 진실을 그녀가 알아 줄 때까지
- 안단테 「에세이」 중에서

남준이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ㅇㅇ동 ㅇㅇ카페요."
그녀는 무릎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남준아."
친구 녀석이 그녀를 슬쩍 보고서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 가끔 사진 보여 주던 그 사람이네.
"다른 애들은 늦는다고 연락 왔더라."
"그래? 그렇구나."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괜찮아요, 좀 전에 커피 마시고 왔거든요."

남준은 테라스에 위치한 작은 탁자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귀여운 빈티지 유리 맥주잔에 빨간 장미가 한 송이 꽂혀 있었다.
빨간 장미, 리본을 맨 여자아이.

"이거라도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그냥 서비스예요."
미니 생크림 케이크와 작은 초 하나, 홍차 두 잔.
"감사합니다."
친구 녀석이 초에 불을 붙였다.
"애들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우리끼리 놀고 있자."
친구 녀석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무슨 소원을 빌지...
남준이 촛불을 후 불어 껐다.
- 그녀랑 결혼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 제발요.

그녀가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사실 제가 먹으려고 샀던 건데, 선물 드릴 게 없어서 이거라도..."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그려진 틴케이스에 담긴 레드체리 초콜릿.

- 여기가 밤이 되면 이 풍경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 시간 가량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새끼들 언제 오는 거야? 전화 좀 해 보고 올게."

그녀는 멍하니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에 젖은 회색빛 거리를.

"몇 명은 갑자기 특근을 해야 해서 못 온대."
"그렇구나."
"우리끼리 그냥 놀자. 아가씨는 시간 괜찮으세요?"
"네? 예, 너무 늦게까지만 아니면요."

친구 녀석이 기타를 꺼내 왔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갑자기 손님들이 열댓 명 들어왔다.
"여기 장사 안 하나요?"

"나갈까요?"
"네? 네."

지갑을 꺼내려는 그녀.
"괜찮아요. 진짜 서비스예요. 정 그러시면 다음에 또 오세요."

남준은 그녀와 함께 골목길을 걸었다.
"괜찮으시면 한강 공원에나 갈까요?"
"네? 네."

남준은 매점에서 치킨과 맥주를 샀다.
그녀는 오징어땅콩과 맥콜을 샀다.

한강 공원 벤치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남준은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 그녀는 말 없이 음료수를 마시며 오징어땅콩을 먹었다.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저 이제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가요. 같은 아파트니까."
"사실 전 그 아파트에 안 살아요. 그냥 근처에 살고 있어요. 아는 사람 집에 잠깐 들렀던 거였어요."
"어쨌든요. 같이 가요."

같이 아파트로 돌아갔다.
내리니 밤이었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몇몇 집들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고 어두컴컴하다.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서 같이 식사라도 하실래요?"
"네? ... 죄송한데, 오늘 처음 뵌 분 집까지 가기는 좀 그런 것 같아요."
"사실은요,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사실은요, 같은 대학교였어요."

남준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 끝 -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 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질 쓰고파
-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중에서



캠퍼스 커플; Lovesick~You don't know~

 

                                                                                                                 - 주예린 지음

 

 


예린은 학생회관 앞 벤치에 앉아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우울할 때는 맛있는 게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라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던 「자기 앞의 생」의 모모를 떠올리며.

"예린아 뭐 하니?"
"공강 시간인데 오빠들이 같이 밥 먹자고 기다리라 하셔서요."
"그렇구나."
"오빠는 식사하셨어요?"
"아니."
남준은 예린의 옆에 앉아서 그냥 담배를 피웠다.
'나도 같이 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
학생회관 앞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여 물결 같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오빠도 같이 밥 먹으러 가실래요?"
"난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그러시구나."
예린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서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단발머리가 봄바람에 가벼이 흔들렸다.
"예린아!"
복학생 두 명이 다가왔다.
"형은 여기서 뭐 하세요?"
"그냥 공강 시간이야."
"저희 밥 먹으러 갈 건데 형 식사하셨어요?"
학교 다니면서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학생회관 메뉴는 비빔밥과 뚝배기불고기, 김치찌개였다.
예린은 비빔밥 식권을 샀다. 남준은 뚝배기불고기 식권을 샀다.
"형 저희 밥 좀 사 주시지."
"오늘 내가 사기로 했었잖아."
예린과 남준이 식판을 집어들다 말고 가만히 복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저희 당구 내기 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밥 사 주는 거거든요. 이 새끼한테 밥 사 주고 싶지 않은데."
복학생 둘이 나란히 앉고 예린과 남준이 나란히 앉았다. 그저 묵묵히 밥을 먹었다.
"형 저희 엠티 갈 건데 형도 가실래요?"
'웬 엠티? 복학생도 엠티를 가나?'
'형들 가면 불편한데, 이 자식은 눈치가 없어.'
복학생 한 명이 다른 복학생을 흘겨보았다.
"내가 무슨 엠티야."
"이번에 재학생 다 같이 엠티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요? 전 처음 듣는데."
"오늘 아침에 정했거든."
"그래요? 언제 가는데요?"
"내일."
"그래요? 회비는 얼마예요?"
"동아리 회비로 가는 거라 돈은 안 내도 돼."
"그래요? 어디로 가는데요?"
"학교 근처."
"그렇구나. 네."
복학생 한 명이 알 수 없는 웃음을 띠었다.
"형도 같이 가시죠."

약속 시간인 일곱 시. 학생회관 앞 시계탑 앞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예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다른 애들은?"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휴대폰이 없어서요."
"그렇구나."
예린이 돈이 없어서 새벽 아르바이트도 하고 고시원에 산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휴대폰도 없을 줄은 몰랐다.

- More than words~
통화 연결음이 한 마디 정도 울렸다.
"여보세요. 형, 벌써 도착하셨어요?"
"벌써라니. 일곱 시에 모이자고 하지 않았어?"
"여덟 시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빨리 가겠습니다."

남준은 자판기 커피를 두 잔 뽑아 예린에게 한 잔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햇살이 따스하다. 눈이 부시도록.
남준은 예린과 플라타너스 아래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편안한 느낌.
따스하고 눈부신 햇살, 얼굴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적당히 촉촉한 아침의 습기 같은 것들. 그리고 가만히 내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신입생 여자아이.

"형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야."
구형 그랜저 뒷자리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남준이 뒷자리에 끼어 타고 예린이 보조석에 앉았다.
"그런데 저희 어디 가요?"
"근처 계곡."
"네."

모두 어딘가 달리고 있어
문득 살짝 찡그린 소녀의 숨소리
손끝을 스치는 바람을 따라
라랄 라랄라 랄랄라
- 페퍼톤스 「21st Century Magic」 중에서

키 큰 나무들과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 그리고 새소리.




- 끝 -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 김광석 「기다려줘」 중에서


 

캠퍼스 커플; Lovesick~You don't know~

 

 

                                                                                                                 - 주예린 지음

 



-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강의가 끝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학교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남준의 시야에 도서관으로 들어가려는 예린이 들어왔다.
'시험 기간도 아닌데 웬 도서관?'
남준은 도서관으로 따라들어가 예린에게 말을 걸었다.
"예린아 뭐 하니?"
"오빠 안녕하세요? 책 빌리려고요."
"무슨 책?"
"몇 권 읽고 싶은 게 있는데, 좀 보고 고르려고요. 오빠는 뭐 하고 계셨어요?"
"나도 책 좀 보려고."
남준은 예린의 뒤를 따라갔다. 책을 고르는 척하며 예린이 들었다 내려놓은 책을 한 권 집어들었다.
예린이 고른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었다.
남준이 집어든 책은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였다. 남준은 예린이 내려놓은 책 중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든 것이었다.
도서관 밖으로 나오니 마침 회색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고 희미한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산속에 여기저기 건물을 얹어 놓은 듯한 학교는 수시로 날씨가 변하곤 했다.
'학교 전체가 흐린 주점 같네.'
남준은 가방에서 삼단 우산을 꺼내는 예린을 흘낏 바라보았다.
'오늘 나는 흐린 학교에 앉아...'
"오빠 우산 있으세요?"
"난 그냥 비 맞고 가면 돼."
"제 거 쓰세요. 제가 맞고 가면 돼요."
어쩔 수 없이 어깨가 반씩만 들어가는 삼단 우산을 같이 쓰고 학생회관까지 걸었다.
동아리방에 도착해 널부러져 있는 우산을 하나 집어든 남준이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복학생이 피식 웃으며 오천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냈다.
"형, 죄송하지만 담배 한 갑만 사다 주세요."
"내가 어디 가는 줄 알고?"
"형이 동방 왔다가 말도 없이 우산 들고 나가면, 담배 사러 가거나 술 사러 가거나 둘 중 하나겠죠."
예린이 복학생과 남준을 번갈아 보다가 일어났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사야 할 거 목록 좀 적어 주세요."
복학생들이 돈을 걷었다.
"그래, 비도 오는데, 한 잔 해야지."
담배 다섯 종류 두 갑씩, 소주 맥주 막걸리 다섯 병씩, 새우깡 열 봉지.
"오빠들 죄송한데 저 혼자 못 들고 올 것 같아요."
결국 복학생 한 명과 남준, 예린, 이렇게 셋이서 학교 앞 슈퍼로 향했다.
흐린 하늘,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학교 앞 주점 스피커에서는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랑한 건 너뿐이야 꿈을 꾼 건 아니었어
너만이 차가운 이 비를 멈출 수 있는 걸

예린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슈퍼로 들어가는 모습을 남준은 조금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예린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하나 골라. 오빠가 담배도 하나 사 줄게."
"네? 죄송한데 저 목 관리하느라 요즘 담배 안 피우는데..."
"괜찮아, 공연도 없는데."
남준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나불거리는 복학생 후배를 우울한 눈빛으로 힐끔 쳐다보았다.
'난 다른 사람 있을 때 아무 말도 못하는데...'
예린은 시즌을 골랐다.
"웬 시즌? 시즌 피우는 사람 처음 본다."
"몬드리안을 좋아해서요."
"그래? 나도 좋아해."
"그러시구나. 그림이 참 예쁘죠? 얼마 전에 전시회 가서 그림을 봤었는데 정말 정성스럽게 그렸더라고요."
'몬드리안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남준은 나불거리는 복학생이 부러웠다.


'나는 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을까.'

 

Piet Mondrian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1930)」

 


예린이 새우깡과 담배가 든 봉지를 양손에 들었고, 남준과 복학생 후배가 술이 든 봉지를 반씩 나눠 들고 학교로 올라갔다.
안개처럼 느껴지는 습한 회색 먹구름이 학교를 뒤덮고 있었고, 주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변진섭의 '새들처럼'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을 떠보면
회색빛 빌딩 사이로 보이는 내 모습이
퍼붓는 소나기
세찬 바람 맞고 거리를 헤매이네

-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남준은 마음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뺨에 말라붙는 눈물이 따스했다.

 

 

 

 



- 다음 화에...

 

 

언제부터일까 이렇게 너를 미치도록 원하게 된 것은
쿨한 나를 무너뜨려 가는 고독한 밤의 정적 깨트려 줘
- Siam shade 「Lovesick~You don't know~」 중에서

 

 

 

캠퍼스 커플; Lovesick~You don't know~

 

 

                                                                                                                 - 주예린 지음

 


인공위성과 몇몇 별들이 숨 죽인 채 반짝이고 있는 고요한 밤이었다. 공대 건물의 몇몇 창문이 하얗게 불을 밝히고 있었을 뿐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준은 학생회관 앞 공터의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빠, 여기서 뭐 하세요?"
남준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그냥, 좀 전까지 과제하다가 동방에 가서 드럼이나 칠까 하고."
"그러세요?"
"넌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니?"
"전 좀 전까지 연습하다가 이제 가려고요."
"그래? 바쁘지 않으면 같이 연습하자."
"네?"
남준은 신입생 보컬 여자 후배와 함께 학생회관 지하의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음료수 하나 뽑아 줄까?"
"괜찮아요."
"괜찮아. 하나 골라 봐."
예린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자판기 커피가 나오는 동안 예린은 자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남준은 예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예린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커피를 쏟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종이컵을 움켜쥔 채 조심조심 걸었다. 남준은 그런 예린을 쳐다보다가 넘어질 뻔했다.
"오빠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남준은 멋쩍게 웃었다.
동아리방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통기타 소리가 문틈으로 새 나오고 있었다.
- 삐걱.
동아리방 문을 열었더니 복학생 두 명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고 복학생 한 명은 담배를 꼬나물고 로망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어, 너네 웬일이야."
"어, 형,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공부하다 심심해서. 오면 안 되니?"
남준은 다 해진 소파에 기대어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한 대 빼 물었다.
복학생 한 명이 말했다.
"형, 오브리나 할까요?"
"그러자."
예린이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서툰 손길로 믹서 및 앰프, 보면대와 의자를 세팅했다. 담배를 피우던 복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와 악기를 잡았다.
"예린아, 넌 무슨 노래 좋아하니?"
"형, 얘는 트로트를 잘 불러요."
"심수봉 노래 좀 불러 봐라."
"네."
예린이 포크송 대백과를 뒤져 심수봉 노래를 몇 곡 찾았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제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남준은 드럼을 치다가 눈물을 삼켰다.
'어제도 울고 오늘도 울었지만 내일은 예린이 때문에 행복했으면...'

 

 


- 다음 화에...

보통 사람의 휴일

 

 

                                                                                                                 - 주예린 지음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물을 마시고
햇살에 눈을 비비며 낮잠을 조금 자고

나른한 배를 쥐어잡고
구토를 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
하면서 뉴스를 본다

동네 놀이터에 나가 타지도 않을
놀이기구들 사이를 걷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해가
저 멀리로 사라진다

별들이 사라진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밤은 컴컴하지도
컴컴하지 않지도 않다

풀벌레 소리 대신 술 취한 사람들의
술주정 소리



2023.4.23.

부치지 않을 편지

                                                                                                                 - 주예린 지음



ㄱ이라고 쓰다 만다

그 하고 썼다 지운다

너는 무엇을 하고 썼다 지운다

너는 지금쯤 어디에서 하고 썼다 지운다

네가 잘 지내기를 하고 썼다 지운다

너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하고 썼다 지운다

보고 싶다고 썼다 지운다

한밤중

 

 

                                                                                                                 - 주예린 지음

 

 

한낮의 열기도 한밤의 식어 버린 달빛도
밤 공기 속을 거닐며 나는 모두 느낄 수 있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있는 세상보다도 내 마음이 느끼는 세상
내 마음이 그 사람 안에 있다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 안에 있고 그 사람은 내 안에 살아 날 살게 한다



20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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