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기반 소설.
쉬파리
- 주예린 지음
- 못생기고 뚱뚱한 년 뭐 볼 게 있다고 윤간까지 해 줘, 잘생긴 우리 애들.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반쯤 찢어진 느낌이 들고 찢어진 살갗 위로 폭행이 계속되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이런저런 소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네 시간밖에 안 했는데 얘 벌써 기절하려고 하네. 좀 더 세게 해서 정신을 들게 하자.
- 혼자 깨끗한 척은 다 하면서 남자친구도 안 사귀고 클럽에도 안 가길래 일부러 잘 덮치는 애 보내서 시키고 있는데, 남자 맛 좀 보여 주려 하는데 지 년이 뭐라고 싫다고 난리를 쳐.
- 우리랑 하기에도 아까운 앤데, 감사한 줄 알 것이지.
해가 뜨고 밤 사이 이어진 강간이 끝났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침대가 아니라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겨우 담배 한 개비를 피울 수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면서 눈이 번쩍 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내가 자살하면 너 때문이야.
담배 연기를 그 새끼 얼굴에 내뿜었다.
- 나 안 했잖아. 구멍만 뚫어 놨을 뿐. 네가 어제 술 취했어서 기억 못 하는 모양인데, 네가 날 꼬셔서 덮쳐 준 것뿐이야. 너 따위 못생기고 늙은 여자를 내가 뭐하러 건드리니.
- 나 어제 술 안 취했었어.
- 취했었어. 기억 못 하는 모양이네.
담배를 피우며 그 새끼 얼굴을 노려보았는데 순간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 보니 대로변에 서서 그 새끼가 차를 타고 달아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 씨발 새끼, 난 왜 저 새끼를 때리지 못 했지?
정신이 들었다가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다리가 허공에 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에 난 술을 마신 기억이 없다. 눈을 떠 보니 정신을 잃은 채 그 새끼에게 준강간을 당하고 있었고 목소리는 목 안에서 빙글빙글 헤엄을 칠 뿐 빠져나오질 못 했다. 눈을 감은 채 시체처럼 그 새끼에게 질질 끌려갔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계단에 내 온 몸을 찢겨 가며. 기억을 잃은 채 끌려 들어갔던 싸구려 모텔방까지.
그 애의 닉네임은 복숭아. 나와 펜팔을 주고받고 있는 옆 반 남자아이.
지긋지긋한 수학 수업. 난 수학이 정말 싫다. 숫자 투성이의 세상 따위 아무런 의미 없는데, 대체 수학 따위 배워서 얻다 쓴담. 계산기 두드리면 될 일을.
수학 시간에는 늘 복숭아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도 얼굴이 발갛게 부어올라 있던 복숭아.
가끔은 정말 진짜 복숭아처럼, 퉁퉁 부어오른 얼굴이 갈라져 복숭아 솜털처럼 보일 듯 말 듯 여린 핏물이 점점이 맺혀 있을 때가 있었다.
- 씨발, 선생들이란 대체 뭐 하러 존재하는 건지. 뭐 하는 개새끼들인지.
복숭아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그 애가 학교 뒤 언덕길, 하굣길, 학생들도 선생들도 있는 곳에서 발가벗겨진 채 윤간을 당하는 걸 본 날부터.
시야가 들어갈 통로를 적당히 비워 둔 채 수십 명의 애새끼들이 뭔가를 지켜보고 있었고, 옆에 있는 남자애나 여자애에게 수표 뭉치를 건네기도 했다. 선생들도 서너 명이 서 있었는데, 선생들은 원형 안이 아니라 원형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이 퀭한 부엉이처럼.
- 야, 다음에 네가 좀 들어가 봐라.
- 씨발.
뭔 짓거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웅성거림과 비웃음 소리가 요란한데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원형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그쪽에는 아무것도 없는 양 조용히 지나치고 있었다.
- 서울 애들은 이상해. 꼭 죽어 있는 사람들 같아. 차가운 느낌. 눈도 꼭 인형 눈깔 같은.
처음 접하는 이상한 신경 고조. 기분이 더러운 듯한데 애새끼들은 웃고 있고 희한하게도 붕 떠 있는 듯한, 원형의 소란함이 궁금했던 나는 지나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원형 쪽으로 다가갔다.
한 아이가 얼굴이 터져 발갛게 부어오른 채 누워 있었고 피와 땀과 침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주변에는 네댓 명의 수컷 및 암컷들이 비웃음을 삼키고 있는 듯한, 괴상한 표정, 뭐랄까, 인육을 먹고 싶어 안달이 난 요괴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신문 기사나 소설에서나 접하던 윤간이라는.
- 씨발, 서울 것들 좆 같다더니.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지포라이터로 한 수컷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제일 세 보이는, 제일 더러워 보이는 애새끼로.
그리고 머리털에 불을 붙였다.
정수리 찍힌 새끼, 그 옆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기묘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개년 개놈들의 머리털에.
다들 고개를 숙이고 원형 경기장 속에 쓰러져 있는 한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뒤통수에 불 붙이는 일 따위 껌이었다.
- 뭐야, 이 미친 년.
- 너 재밌네?
지포라이터로 아구창을 쪼사버렸다.
피와 침, 땀, 미끈미끈해 보이는, 구린내가 날 것 같은 액체로 범벅이 된 한 아이를 덮치느라 정신이 나가 있는 암컷의 머리에도 불을 붙인 뒤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전학 온다고 새로 산 딱딱한 학생화, 군화 비슷한 오래된 디자인의 학생화.
'오늘 신고 오길 잘했어.'
- 야 이 씨발것들아, 경찰 불러. 눈깔 파 버리기 전에!
집에서 장구 치며 판소리 연습하는 게 취미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씨발, 선생 새끼들 뭐야? 교육청에 고발 넣기 전에 이 수컷 암컷들 처리해. 씨발!
원형 경기장 밖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새까만 외제차에서 몇몇이 내렸다. 딱 봐도 병신 같은 강남 학부모 스타일이었다. 자식들을 고작 인서울 4년제 보내려고 어릴 때부터 사교육 뺑뺑이를 돌린다는. 지능이 얼마나 딸리면 정규 교육 수준에서 출제되는 수능 점수를 위해 어릴 때부터 돈 처발라 사교육을 시킬까 싶었는데, 이 짓거리 하는 걸 보니, 쉬파리 수준도 아깝지만 쉬파리 수준 정도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똥 위에도 앉았다가 사람에게도 앉았다가. 피를 빨아먹는 쉬파리.
반짝반짝 초록빛으로 빛나며 다른 파리보다 커서 눈에 띄지만 파리채로 내리쳐 잡고 보면 썩은 피가 터져 나오는 쉬파리.
학부모들의 손에 들린 게 뭘까 싶었는데, 칼이었다.
- 사람 살려요! 살인 일어나겠어요! 칼 들고 설치는 인간들이 있어요!
온 동네가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키득거리던 애새끼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 병신들, 애미년들 오면 내가 쫄 줄 알았나 보네.
- 악~~~~~~~~~~~~~~~~~~~~~~~~~~~~~~~~~~~~~~
계속 소리를 질렀다.
선생들도 어디론가 뛰어갔다.
선생 한 명만이 남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애미년 하나가 선생의 뺨을 쫙 후려갈겼다.
- 김 선생, 요새 학교 관리 어떻게 하는 거야?
선생이란 게 병신같이 저딴 애미년한테 뺨이나 맞고 있다니.
- 씨 ! 발 ! 경! 찰! 언! 제! 오! 냐! 고! 씨! 발! 개! 좆! 같! 네!!!
선생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애미년들은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너 진짜 재밌는 애구나?
- 지랄. 재미 같은 소리 하네.
애미년의 아구창을 날려버렸다.
난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 보는 기묘한, 정말이지 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나한테 맞은 애미년이 썩어 문드러진 듯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지옥도 아니고 뭐랄까, 악마도 아니고, 짐승만도 못 하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요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썩어서 악취가 진동을 하는 고깃덩어리.
그리고 거기에 달라붙는 쉬파리.
값비싼 외제차,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맞춤 정장, 세팅된 머리, 어디 미용원에라도 다녀온 듯한 방송용 화장, 그런데 그에 어울리지 않는 정말이지 괴상한 분위기. 썩어빠진 웃음, 그런데 엄청나게 아픈, 그런데 무언가를 비웃고 있는, 영혼이 없는 듯한, 공기 주머니가 붕 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의 덩어리. 인간이라 하기엔, 이 단어가 너무나도 어색한,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그런 해괴한, 정말이지 기묘한, 그런 애미년과 수컷 암컷들.
지금까지 자기들이 가해한 모든 존재들의 피와 갖은 체액, 고통과 절망 등을 빨아먹고 시꺼멓고 뒤틀린 피비린내 덩어리가 된 듯한, 그런, 그런 애미년과 수컷 암컷들.
경찰차가 소리 없이 오고 있었다.
- 서울이란 정말이지 괴상해.
저 애미년이 날 폭행죄로 고소할까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 뭐, 소년원 갔다 와도 공장 정도는 취직할 수 있겠지.
경찰차가 다가오자 한 애미년이 새까만 백을 하나 챙겨 들었다.
- 김 순경, 이거 받고 알아서 처리 좀 해 줘.
희한하게도, 경찰은,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가방만 손에 든 채 사라졌다.
애미년들은, 날 보며 기묘하고 괴상한, 비웃음과 멸시가 뒤섞인 뒤틀린 표정을 짓더니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 주변에서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일도 없었다.
다만, 핏빛으로 얼룩져 있던 그 아이는, 여전히 얼굴이 거무스름한 핏빛인 채 학교에 나오고 있었다.
- 복숭아에게.
복숭아야, 안녕?
난 며칠 전에 전학 온 지포라고 해.
여전히 네 얼굴에 피딱지가 가시질 않아 가무잡잡한 채로 학교에 나오고 있는 걸 보고서 이렇게 펜을 든다.
난 서울 오기 전 집에서 장구와 판소리를 연습했었어. 서울 오니 소리 지를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었었는데, 며칠 전 우연히 네가 있는 곳 옆에서 목청을 좀 가다듬었어. 사방이 탁 트인 언덕길이라 목 틔우기에 좋을 것 같더라고.
내가 목청이 좀 클 뿐 돌아이는 아니니 괜찮다면 친하게 지내자.
- 디스를 피우는 지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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