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 주예린 지음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여

당연하다는 말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하여

그것은 피난이 아니라 탈출

 

어둠 속에서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들어가면 감은 두 눈 속으로 따스함이 번지는

 

바깥 세상이 바뀌어 수억 년이 흘러도

어떻게 바뀌는지조차 몰라도 상관없는

 

너와 나

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구원은 필요 없어도

안식은 필요하니

 

그곳에 어둠뿐일지라도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곳은 피난처

 

네가 있는 곳

내가 머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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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う死にたいと思うときの生き延び方

小さなことに喜ぶ  人間にとって幸福とは、人並み外れた成功とか、栄光、賞賛、勝利ではありません。  では、何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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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う死にたいと思うときの生き延び方 - 浦和神経サナトリウ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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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서 이래저래 검색하다 보게 된 글인데 좋아서 번역.
원문은 허락 받고 퍼 온 건 아니고 그냥 퍼 온 것...



우라와 신경 새너토리엄
원장의 에세이 아카이브


이제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할 때의 더 사는 법



작은 일에 기뻐한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이란,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성공이라든지, 영광, 상찬(칭찬), 승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행복이란 단언컨대 주관적인 것입니다. 오늘, 숨을 쉬며 살아 있는 것. 이것은, 무척이나 축복받은 것입니다. 주위의 경치를 돌아보는 것. 오늘의 공기의 냄새를 맡는 것.

 마음은 흐린 하늘입니다만, 왜인지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입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것, 혹은, 가족이 있는 것.

 꿈꿀 수 없는 환경,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 그러나, 손이 있고, 눈이 있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손을 바라보세요. 오랫동안, 일해 준 손입니다.

 

심호흡을 한다
 먼저, 이 글을 읽기 전에, 심호흡을 합시다.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오랫동안 내뱉읍시다. 가능하다면 일어서서, 천천히 7초간 내뱉읍시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얼굴 근육의 힘을 뺍시다. 어깨를 편하게 합시다. 힘을 뺍시다.

 세상은 당신에게 그렇게 많은 걸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호흡을 세 번 반복합시다. 마음은 컨트롤할 수 없지만, 몸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건 관두자
 성공이라는 것, 승리라는 것, 칭찬, 거대한 성과, 탁월한 능력, 보기 드문 미모, 쌓아둔 재물, 그것이 사라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만약, 해당되는 게 있다면 감사합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영속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를 들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고 하여 도대체 무엇이 된다는 말입니까.

 거꾸로, 의미 없는 인생이라든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든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든가, 밥벌레 등의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요. 같은 듯한 인간에게, 자신은 더 훌륭하다고 하는 자존심이나 우월감을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로서는 다른 이에게 공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이의 성공이나 다른 이의 실패에, 모두들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이와 비교하여 자신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건 관둡시다. 단지, 다른 이와 비교하여 자신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독과 친구
 친구가 있냐, 없냐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풍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신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친구는 무조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신경을 쓸 일이 없는 고독은 좋다. 다른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관심을 조금 가지는 정도면 괜찮습니다. 같이 어울리자고 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귀찮은 일이 없어서 최고입니다. 거절하는 데 쓸 에너지도 아낄 수 있습니다.

 친구가 없는 원인이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거지에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여 속앓이를 하는 것은 관둡시다. 그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친구가 없는, 훌륭한 고독, 번잡스럽지 않은 생활을 즐깁시다.


정신과, 심리 치료 진료를 받는다
 죽고 싶어졌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읍시다. 적절한 치료를 받음으로써, 그릇된 자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근년의 자살 수의 감소는(일본 기준. 원문 작성 2021년, 갱신 2022년) 항우울제의 영향이 크다고 사료됩니다. 잘 사용하면, 그런 작은 것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신과의 진료소, 병원, 정신과 의사를 잘 이용해 주세요. 당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생물학적인 것이 우울증에 작용하는 또 하나의 경우를 이야기합시다. 조울증의 치료로, 리튬의 약을 씁니다. 원소 기호는 Li입니다.

 각지의 수돗물에 자연적으로 포함돼 있는 리튬의 농도는 각기 다릅니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리튬의 농도가 높은(이라고 해도 미량)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지역의 자살률은, 리튬 농도가 낮은 지역의 자살률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큐슈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수원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미처 생각이 가닿지 않는 것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일인데, 인간은 원인을 잘못 발견하여, 그 원인과 싸우고 있는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어, 결과적으로 사태가 달라져 있다든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은 자신이 발견한 원인이 해결책이 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있습니다.


죽는 것을 미뤄라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만, 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조금 있으면 가라앉기도 합니다. 파도 같기도 하지요.

 죽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도, 다음날이면 어떻게든 차분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파도가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의식 속에서 옅어져 갑니다. 다시금, 죽고 싶다는 마음이 온다면?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립시다. 허나, 그 사이에, 무언가의 대책,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오늘은 암울한 기분인 채로 괜찮습니다. 불완전한 채로 잠에 듭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언컨대 유효합니다.



죽는 것은 정당한가?
 자살은,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상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연인에게 차였다, 경제적으로 절망, 되돌릴 수가 없는 실패. 아니, 그 어떤 것이든, 죽음에 비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뿐이랴, 인간은, 정말이지 평생 보상받지 못하니까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이것이 인지 착오입니다. 간단히 절망하는 쪽으로 치우쳐 버립니다. 인간의 어떠한 실패도 상실도, 인생을 저버릴 만큼의 일은 아닙니다.

 상실은 새로운 출발이기도 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실패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정당한 자살이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 혼자만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지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면 부족함 없으리. 마음에 바라는 바 떠오르면 곤궁했을 때를 떠올리시구려.'

 천하의 대장군일지언정 이렇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불행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인(凡人)이, 쉽게 쉽게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도 당연한 것. 자신만이 괴로워하고 있다든가, 자신만이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착오입니다.

 또한, 이에야스는 이렇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모자란 것은 넘치는 것보다 낫다'. 모자라다, 능력이 모자라다, 성과가 모자라다, 미모가 모자라다, 돈이 모자라다, 재능이 모자라다. 운이 모자라다. 그 편이 실은 좋은 것이다. 긴 안목으로 보면 그 편이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불행한가? 아뇨.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약자라면 죽는 편이 나을까
 약자로 있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강자는 약자가 받쳐 주고 있습니다. 약자가 없다면 강자로 있을 수 없으니까요.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은, 우수하지 않은 사람이 받쳐 주고 있습니다. 경제적 강자는 경제적 약자가 받쳐 주고 있습니다. 훔쳐지는 건 훔치는 것이 받쳐 주고 있습니다.

 아등바등 일하는 사람과 아등바등 일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채워 주고 있습니다.

 성과를 내는 사람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자신의 가치가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명의 전화에 전화해 봅시다. 훈련된 분들이 이야기를 들어 줍니다.



항우울제를 먹는다
 항우울제의 매출 증가와 자살률의 감소와의 사이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략인자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죽고 싶다'의 원인이 생물학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면, 항우울제를 바르게 복용함으로써, 회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자살에는, 최종적으로는 생물학적인 문제가 중첩돼 오기 때문에, 올바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정신과나 심리 치료 진료를 받읍시다.

 항우울제는, 원칙적으로 한 종류의 약을 충분한 양, 충분한 기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몇 주가 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적정하게 사용한다면, 효과가 발휘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 사이에는, '기다림'이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일을 쉰다 집안일을 쉰다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을 쉽시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도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주위에 알립시다. 이해해 주는 사람과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보통입니다.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도록 합시다. 그것을 이러니 저러니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에게서 진단서를 받읍시다.


위인에게서 배운다
 아카이브에서 소개한 것처럼,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우울함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우울함을 뛰어넘은 위인들에게서 삶의 방식을 배웁시다.

 죽고 싶어졌다면, 자신이 위인과 비슷한 성질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위인들이 어떻게 우울함과 맞섰는지, '위인의 우울증' 등 이 아카이브를 봐 주세요.


새로운 게 아니라, 수리・수선을 한다
 우울 상태일 때,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부담입니다. 이러저러한 '고침'을 합시다. 보수, 수리, 퇴고, 수선, 그 외. 청소도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수선이지요. 그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 작은 일로서 괜찮습니다.


비생산적으로 살자
 생산성이 높은 것은,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비생산적이라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비생산성을 지향합시다. 생산적인 사람이 평가받는 것은, 비생산적인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비생산적인 사람은 생산적인 사람을 받쳐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가치관이 잘못돼 있지는 않나요? 뭔가를 잘하는 사람만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뭔가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비생산적으로 살자


잔다
 자 버립시다. 대부분의 문제는, 생각함으로써, 노력함으로써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 버립시다. 멀리 도피합시다.


역설적・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생겨난 말로, 「noblesse(귀족)」과 「obliger(의무를 부담시키다)」를 합성한 말이라고 하는데, 재력, 권력,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라고 인터넷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복 받은 사람은, 그에 응하여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하는 서양 사회의 도덕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왠지, 약간 으스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복 받은 인간에게만 의무가 따른다는 것은.

 잘난 인간은, 잘나지 않은 인간이 다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잘난 인간이 돼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잘난 인간이 잘난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잘나지 않은 인간이 있다고 하는 공헌 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인간이 있기까지 그 사람의 노력도 재능도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잘나지 않은 인간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복 받지 않은 인간에게는, 더 고귀한 의무가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위에 쓴 것처럼 바르게 바라보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 의의
 자신의 존재 의의가 없으니까 살아 있어도 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의 존재 의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과도한 걸 바라는 게 아닐런지요. 겐자(源左; 독실한 정토종 신자로서 위인으로 모셔지고 있는 듯) 등의 묘호인의 입을 빌리자면, 그와 같은 생각은 '깜짝 놀랄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쭐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재 의의가 있는 사람은 위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인은 위인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위인이 되었습니다. 위인을 만드는 건, 위인이 아닌 사람입니다. 위인이 존재 의의를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보통입니다. 존재 의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는 인간은 귀중합니다. 이 세상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은 편한 일입니다. 보통입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점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세상에는 도움이 되는 인간과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있다고 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대단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역할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폼이 안 난다, 부끄러울 듯한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라고 하는 역할을 수용한 인간이 대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더욱 대단한 것입니다.

 도움이 되는 인간은, 도움이 되는 것을 자신의 구심점으로 삼아 살아 있는 약한 인간입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자신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살아 있는 강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타인에게서 이해받지 못한다
 타인에게서 이해받고 싶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서 이해받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타인이 생각 없는 말을 해도, 매정한 처사를 해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르는 법입니다.

 그게 보통입니다.

 타인에게서 무언가 신경 쓰이는 말을 들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이의 차가운 말이 아니라, 나는 역시 안 되는 인간인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 자신을 탓하고 마는 것입니다. 다른 이는, 실은 나를 상처 주려고 한 게 아닙니다. 자신을 상처 입히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중요한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것입니다. 성격이나 가정, 재능, 좋은 반려자, 경제력은, 평등하게 주어져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은, 예를 들자면 살아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은, 위에 열거한 다양한 것들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힘낼 필요도 이길 필요도 성공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무언가에 뛰어난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비한다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 비는, 죽고 싶은 사람에게도 불우한 사람에게도 성공한 이에게도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는 것은, 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불평등하게 편재돼 주어지고 있는 것의 가치는 한정적입니다.


살아 있는 가치
 살아 있는 가치의 최대치가 100이라고 칩시다. 100을 점하고 있는 것은, 그저 살아 있다고 하는 것뿐입니다. 단지 살아 있음으로써 100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과 실패, 부유와 빈곤, 칭찬과 비난, 명예와 치욕, 행복한 결혼 생활과 이혼. 건강과 병, 이것들은, 얼만큼을 차지하는 걸까? '1'입니다. 살아 있는 것 100에 대해 그저 1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인생 가운데 무언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가치는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모순적입니까? 인생은 모순적인 것입니다.

번역 (2020.3.22.)

원문 출처: https://www.aozora.gr.jp/cards/000035/files/42376_15545.html

 

太宰治 葉桜と魔笛

 

www.aozora.gr.jp



『새잎 돋은 벚나무와 요술피리(葉桜と魔笛)』
ー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주예린 번역




 벚꽃이 지고, 이렇듯 푸른 잎 돋아나는 시기가 되면, 저는, 늘 떠올립니다. ――라고, 그 노부인은 이야기한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아버지는 그 무렵 아직 살아 계시어서, 저의 일가족, 이라 하여도, 어머니는 그로부터 7년 전, 제가 13살이었을 때, 이미 타계하시어, 그 뒤로는, 아버지와, 저와 여동생과 셋이서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만, 아버지는, 저 열여덟, 여동생 열여섯이었을 때에, 시마네현(島根県)의 일본해(역자 주: 일본에서 볼 적에...)를 낀 인구 2만 남짓한 어느 성 아랫마을에, 중학교 교장으로서 부임해, 마땅한 셋집도 없었던 터라, 마을에서 떨어진, 금방이라도 산에 다다를 듯한, 약간 떨어진 곳에 외로이 서 있는 절의, 떨어진 손님방, 두 개를 빌려, 거기에, 쭉, 여섯 해째에 마츠에(松江)의 중학교로 전임할 때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한 것은, 마츠에에 오고 나서의 일로, 스물넷의 가을이었으니까, 당시로서는 꽤 늦은 결혼이었습니다.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완고한 교육자 기질이라, 세속의 일에는, 아예, 깜깜하여, 제가 없어지고 나면, 온 집안 살림이, 온통 엉망진창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였기에, 저도, 그 전까지 혼사에 대한 이야기가 차고 넘쳤었지만, 집을 버리면서까지, 시집살이를 하러 갈 기분은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다 못해, 여동생이라도 건강했었더라면, 저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웠겠습니다만, 여동생은, 저와 달리, 무척이나 아름답고, 머리도 길고, 참으로 잘생긴, 어여쁜 아이였습니다만, 몸이 약하여, 그 성 아랫마을에 와서, 두 해째의 봄, 저 스물, 여동생 열여덟에, 여동생은, 죽었습니다. 그 무렵의, 이것은, 이야기입니다. 여동생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가망이 없었습니다. 신장 결핵이라고 하는, 나쁜 병에 걸리어, 알아차렸을 때에는, 양쪽의 신장이, 벌써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기에, 의사도, 백일 이내, 라고 딱 잘라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여도, 손쓸 수가 없는 지경인 것이라 합니다. 한 달 지나, 두 달 지나, 어느덧 백일째가 가까워졌어도, 우리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동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의외로 생기 있게, 종일 침대에 누운 채이긴 합니다만, 그렇다 하여도, 밝게 노래를 부르거나, 농담을 하거나, 제게 응석을 부리거나, 이런 것이 이제 삼사십일 지나면, 죽어 버리는 것이다, 확실히, 그리 정해져 있는 것이다,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이 고통스러워, 저는, 미쳐 버릴 것만 같습니다. 삼월, 사월, 오월, 그렇습니다. 오월의 한가운데, 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들도 산도 신록으로, 알몸이 되어 버리고 싶을 만큼 따뜻하여, 저에게는, 신록이 눈부시어, 눈이 따끔따끔 아려와,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어 허리끈 사이에 양손을 가만히 찔러 넣고서, 고개를 숙이고 들길을 걸으며, 생각, 또 생각, 이것도 저것도 모두 괴로운 일투성이여서 숨이 안 쉬어질 만큼, 저는, 몸부림치며 걸었습니다. 도옹, 도옹, 하고 봄날의 흙의 밑에서 밑에서부터, 마치 극락정토에서부터 울려퍼져 오는 듯이, 어렴풋한, 그렇지만, 두려워질 만큼 광대한, 마치 지옥의 저 끝에서 커다랗고 커다란 큰 북이라도 두들겨 울리고 있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퍼져 와, 저에게는, 그 공포스러운 소리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정말 이미 내가 미쳐 버린 게 아닌가, 생각하여, 그대로, 몸이 뻣뻣이 굳어 움츠러들어, 돌연 와앗! 하고 큰 소리가 나와, 서 있질 못하고 콰당 들판에 주저앉아, 무엇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울음을 터뜨려 버렸습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그 무섭고 괴상한 소리는, 대마도 해전(역자 주: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다자이 오사무가 일제의 사상에 그저 순응하는 '순진무구한 백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몇몇 작품이 번역되지 않은 게 그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군함의 대포 소리였다고 합니다. 토우고우(東郷. 역자 주: 일본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도고'이나, 외국어 원음에 가깝게 표기 및 발음 가능한 한글과 한국어를 두고 왜 희한한 규칙을 만들어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에 그냥 저렇게 표기. 한국인은 청음, 발음 시 맨 앞에 오는 예사소리를 거센소리와 구분하지 못하기에 그렇다고 하는데 내 주변인들은 다 구분하고 있음) 제독의 명령 아래, 러시아 제국의 발트 함대를 일거에 격멸하시기(역자 주: '하기'가 아니라 '하시기'라는 의미의 존댓말을 쓰고 있다. 역시 이런 이유로 번역이 안 된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 전체적으로 존댓말을 과도하게 많이 쓰고 있기는 하지만) 위한, 대격전의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딱, 그즈음인 것이지요. 해군 기념일은, 올해도, 다시, 슬슬 다가옵니다. 저 해안의 성 아랫마을에도, 대포 소리가, 온몸이 오그라들 만치 들려와서, 마을 사람들도, 생기가 없었던 것입니다만, 저는, 그런 것이라고는 모른 채, 그저 온통 여동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반미치광이 상태였던 것으로, 뭔가 불길한 지옥의 큰 북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오랫동안 들판에서, 얼굴도 들지 않고 그저 울고만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왔을 무렵, 저는 겨우 일어서서, 죽은 듯이, 멍하니 절에 돌아왔습니다.
 "언니." 하고 여동생이 부르고 있습니다. 여동생도, 그 무렵은, 수척해져서, 힘없이, 스스로도, 희미하게나마, 이제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모양으로, 이전처럼, 괜히 뭐라뭐라 저에게 트집 잡아 심술 부리거나 응석 부리는 등의 일이, 없어져 버려서, 저에게는, 그것이 또 하나 그리도 괴로운 일인 것입니다.
 "언니, 이 편지, 언제 온 거야?"
 저는, 흠칫, 양심이 찔려, 얼굴의 핏기가 사라진 것을 스스로도 명확히 의식하였습니다.
 "언제 온 거야?" 여동생은, 무심한 듯합니다.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방금 전에. 당신이 주무시고 계시던 동안에. 너, 웃으면서 자고 있던걸. 나, 슬쩍 네 베갯머리에 놓아 뒀었어. 몰랐지?"
 "아, 응, 몰랐어." 여동생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희게 아름답게 웃으며, "언니, 나, 이 편지 읽었어. 이상하네. 내가 모르는 사람이야."
 모를 리가 있나. 저는, 그 편지를 보낸 M・T라고 하는 남자를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아뇨, 만난 적은 없는 것입니다만, 제가, 그로부터 5, 6일 전, 여동생의 장롱을 조용히 정리하여, 그 상자에, 하나의 서랍의 가장 깊숙한 곳에, 한 다발의 편지가, 녹색 리본으로 꽉 묶여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여,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만, 리본을 풀어, 봐 버린 것입니다. 대강 삼십 통 정도의 편지, 모두가 그 M・T 씨한테서 온 편지였던 것입니다. 단지 편지의 겉면에는, M・T 씨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은 채. 편지 속에 제대로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편지의 겉면에는, 보낸 이로서 이런저런 여성의 이름이 기입돼 있어, 그것이 죄다, 실재하는, 여동생의 친구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저도 아버지도, 이렇게 한가득 남자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을 줄은,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분명, 그 M・T라고 하는 이는, 주의 깊게, 여동생에게서 친구의 이름을 잔뜩 알아 두고서, 차례차례 그 수많은 이름을 써서 편지를 부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저는, 그리 생각을 굳히고, 젊은이들의 대담함에, 숨죽여 혀를 내두르며, 그 엄격한 아버지에게 발각되면, 어찌 될 것인가, 몸서리 칠 만큼 두려워져, 그렇지만, 한 통씩 날짜순으로 읽어 나가면서, 저마저, 왠지 즐거워서 마음이 들떠 와, 두근거림은, 뜻밖의 타인의 연애사에, 혼자서 킥킥 웃어 버려서, 끝무렵에는 저 자신에게마저, 넓고 큰 세계가 펼쳐져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 무렵은 갓 스물이 되었을 뿐으로, 젊은 여자로서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괴로움도, 이래저래 있었던 것입니다. 삼십 통 남짓의, 그 편지를, 마치 계곡물이 쏟아져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쭉쭉 읽어 내려가, 작년 가을의, 마지막 한 통의 편지를, 읽다 말고, 문득 일어서 버렸습니다. 번개를 맞은 듯한 느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뒤로 자빠질 정도로, 흠칫 하였습니다. 여동생의 연애는, 마음만의 연애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더욱 망측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편지를 태웠습니다. 한 통 남기지 않고 태웠습니다. M・T는, 저 성 아랫마을에 사는, 가난한 가인(歌人)인 모양으로, 비겁하기로는, 여동생의 병세를 앎과 더불어, 여동생을 버리어, 이제 서로 잊어 버립시다, 따위 잔혹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그 편지에도 써 두어, 그것으로, 한 통의 편지도 부치지 않는 듯한 상황이었던 것이기에, 이것은, 나만 입 다물고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여동생은, 순결한 소녀인 채 죽어 간다.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하고 저는 고통을 가슴 속에 억눌러,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아 버리고 나서는, 더욱더 여동생이 가여워, 이런저런 해괴한 공상도 하며, 저 자신, 가슴이 욱신거릴 듯한, 새큼달큼한, 그것은, 께름칙하고 애달픈 감정으로, 이 같은 괴로움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가 아니면, 깨닫지 못하는, 생지옥인 것입니다. 마치, 제가 저 스스로, 그런 쓰라림과 마주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저는, 홀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은, 저 스스로도, 정말로, 조금, 이상했던 것입니다.
 "언니, 읽어 줘. 뭔 일인지, 나는, 조금도 모르겠어."
 저는, 여동생의 부정직함을 진심으로 얄밉게 여겼습니다.
 "읽어도 괜찮아?" 그리 작은 목소리로 물어, 여동생에게서 편지를 받아든 제 손끝은, 당혹스러울 만치 떨리고 있었습니다. 펼쳐서 읽을 것까지도 없이, 저는, 이 편지의 문구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덤덤한 얼굴로 그것을 읽어야만 합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 것입니다. 저는, 편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소리 높여 읽었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오늘까지, 꾹꾹 참으며 당신에게 편지를 바치지 않았던 까닭은, 모두 제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난하고, 무능합니다. 당신 하나를, 어떻게 해 주는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저 말로써, 그 말에는, 한치도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만, 단지 말로써, 당신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 말고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저 자신의 무력이, 싫어진 것입니다. 당신을, 하루도, 아니 꿈에서조차, 잊은 적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을, 어찌 해 주는 것도 되지 않는다. 이것이, 괴로움에, 저는, 당신과, 헤어지자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불행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리하여 저의 애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저는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결코, 당신을 속이려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스스로가 정의 내린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 착각. 저는, 결단코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저는, 당신에게 있어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들, 외로이 무력하기에, 달리 무엇도 할 수 없기에, 적어도 말만이라도, 성심성의껏 전하는 것이, 참된, 겸손한 아름다운 삶의 자세일지니, 하고 저는 이제 비로소 믿고 있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좋아. 민들레꽃 한 송이 건네는 것이라도, 결코 부끄러워 않고 내미는 것이, 가장 용기 있는, 사나이다운 태도라고 믿습니다. 저는, 더이상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노래를 지어 바치겠습니다. 그로부터, 매일, 매일, 당신의 정원의 울타리 밖에서, 휘파람 불어, 들려 드리겠습니다. 내일 밤 여섯 시가 되면, 즉시 휘파람, 군함 마치 불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휘파람을, 무척 잘 붑니다. 지금 여기, 그것만이, 제 힘으로, 그저 가능한 일입니다. 웃으시면, 안 됩니다. 아니, 웃어 주십시오. 건강하십시오. 신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도, 모두 신이 어여삐 여기시는 존재입니다. 틀림없이, 아름답게 맺어질 수 있습니다.
 
 기다림 끝에 올해도 피어나는 복숭아 꽃잎 희다 하는 와중에 꽃은 붉어져 가네
 (待ち待ちて ことし咲きけり 桃の花 白と聞きつつ 花は紅なり)
 저는 배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M・T.

 "언니, 나 알고 있어." 여동생은, 맑은 목소리로 그리 읊조리어, "고마워, 언니, 이거, 언니가 쓴 거지."
 저는, 부끄러운 나머지, 그 편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발기고,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쥐어뜯고 싶었습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라는 건 이런 마음을 가리켜 하는 말이겠지요. 내가 쓴 것이다. 여동생의 고통을 눈뜨고 보지 못하여, 제가, 이제부터 매일, M・T의 필적을 흉내 내어, 여동생이 죽는 날까지, 편지를 써, 서투른 시(和歌)를, 고심하여 지어, 그리하여 밤 여섯 시면, 몰래 담장 밖으로 나가, 휘파람 불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끄러웠다. 어줍은 노래 같은 것까지 써서,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몸뚱아리도 삶도, 딴생각으로, 저는, 곧장은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언니,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여동생은, 이상하리 만치 침착히, 숭고할 정도로 아름답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언니, 그 녹색 리본으로 묶어 놓은 편지를 본 거지? 그건, 거짓말. 나, 너무 외로워서, 재작년 가을부터, 혼자서 그런 편지 써서, 나한테 오게끔 우체통에 넣고 있었어. 언니,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 청춘이라고 하는 건, 꽤 소중한 거야. 나, 병에 걸리고 나서, 그걸, 확실히 알게 되었어. 혼자서, 자기 앞으로 편지 따위 적는다는 게, 추잡스러워. 한심하다. 멍청이다. 나는, 진짜로 남자랑, 대담하게 놀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 몸을, 꽉 안기고 싶었어. 언니,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연인은 커녕, 외간 남자랑 얘기조차 해 본 적이 없었어. 언니도, 그렇지. 언니, 우리들 잘못하고 있었어. 빈틈이 너무 없어. 하아, 죽는다는 거, 싫어. 내 손이, 손끝이, 머리칼이, 가여워. 죽는다니, 싫어. 싫어."
 저는, 슬프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면서, 기쁘기도 하면서, 부끄럽기도 하면서, 가슴이 메어와,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려, 여동생의 여윈 뺨에, 제 뺨을 꼭 눌러 맞대어, 그저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려 와, 가만히 여동생을 안아 주었습니다. 그때, 아아, 들려오는 것입니다. 낮고 희미하게, 그러나, 확실히, 군함 마치의 휘파람입니다. 여동생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아, 시계를 보니 여섯 시인 것입니다. 우리들,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억세게 억세게 끌어안은 채, 미동도 않은 채, 저 정원의 푸른 잎새 돋은 벚나무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이상야릇한 마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신은, 있다. 반드시, 있다. 저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여동생은, 그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 죽었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조용히, 일찍 숨을 거둬 버렸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 순간 놀라지 않았다.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나이 들어, 이런저런 물욕이 생겨나, 부끄럽습니다. 신앙이건 뭐건 조금 희미해져 온 것이겠습니다만, 그 휘파람도, 어쩌면, 아버지가 벌이신 일은 아니었을까 하고, 뭐랄까 그런 의심을 품는 일도 있습니다. 학교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뒤, 옆방에서, 서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측은히 여기시어, 엄혹한 아버지로서는 일생일대의 연극을 하신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도, 있습니다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요.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여쭤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이러니저러니 15년째가 된 것입니다. 아니, 역시 신의 자비겠지요.
 저는, 그리 믿어 안심하고 싶은 것이겠습니다만, 어쩐지, 나이를 먹을수록, 물욕이 일어, 신앙도 옅어져 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습니다.

에세이 '가난은 어디로 간 걸까' ㅡ 무라카미 하루키.
원제: '貧乏はどこに行ったのか?' - "村上朝日堂 はいほー!" 중에서

 

                                                                                                                   주예린 번역



자랑할 건 못 되지만, 나는 예전에 꽤 가난했던 적이 있다. 갓 결혼했을 무렵으로, 우리는 가구도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난로조차 없어서, 추운 밤에는 고양이를 껴안아 온기를 얻었다. 고양이도 추우니까 필사적으로 인간에게 매달려 있었다. 이쯤 되면 이제 공생 같은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목이 말라도 찻집에라고는 들어간 적도 없었다. 여행도 한 적이 없었고, 옷도 사지 않았다. 그저 그냥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돈이 있었으면은 하고 물론 생각이야 했지만, 없는 건 없는 거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여기고 있었다. 어쩔 도리도 없이 돈에 쪼들려 아내와 둘이서 밤중에 그저 머리를 떨구고 길을 걷다가 만 엔 지폐를 세 장 주운 적이 있었다. 나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파출소에 갖다주지 않고 그 돈으로 빚을 갚았다. 인생도 버린 게 아닌가, 하고 그때 생각했다. 우리는 젊어서, 세상 물정을 거의 몰라서,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있어서, 가난 따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대학을 나왔지만, 취직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저 좋을 대로 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회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지만, 불안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뭐, 어쨌거나 가난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 일도 있었지, 이런 것도 했지, 하고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른바 가난 자랑이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모이면 다들 이런 류의 가난 자랑을 했다. 누군가가 자기가 전에(혹은 지금) 얼마만치 가난했는지(한지)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가 "농담 아니야, 그런 건 가난 축에도 못 끼어" 하고 말을 꺼낸다. "나 같은 놈은, 일주일 동안 고양이 사료를 먹고 살았다고"라나 뭐라나. 이건 나 개인이 놓여 있던 환경의 특이성일지도 모르겠으나, 내 주변에는 가난한 인간이 한가득 있었다. 그들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했다. 코바야시 군은 먹을 게 없어서, 표고버섯의 심을 그릇 가득 먹고서 배를 앓았다. 제대로 된 인간은 그런 걸 먹지 않는다. 호리우치 군도 무진장 가난했다. 언제나 속을 비워서 비틀비틀 비틀거리며 걸어다녔다. 얼마 전까지(고작 4, 5년 전까지) 내 주변에는 차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엄청나게 오래된 세 모델 전의 카로라(*토요타 자동차의 차 모델명. 우리나라 현대 소나타 정도인 듯)라든가, 지저분한 라이트에스(*토요타 자동차의 차 모델명. 우리나라 기아 카니발 정도인 듯)라든가, 그 정도의 차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모두들 기이하게도 가난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내 주변에는 벤츠를 갖고 있는 인간이 몇 명인가 있다. BMW를 갖고 있는 인간도 있고, 볼보를 갖고 있는 인간도 있다. 내 주변에 부자인 지인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인간이 모두들 어쩌다 보니 가난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건 뭐 나이에 따른 것이겠지. 모두들 나이를 먹어서, 어쩌다 그리 돼 버린 것이라고. 하지만 그와 더불어 세상의 풍조라는 것도 꽤 큰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세상이 가난이라고 하는 것을 그다지 쳐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돈이 없는 비참한 상황으로서밖에 여겨지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가난 자랑 따위 이제는 전혀 의미를 갖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가끔 젊은 여자들과 만나서 얘기하면ㅡ변명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가끔입니다ㅡ 그녀들은 딱 잘라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희망"이 아니라, "신념 표명"이다. 상당히 딱 잘라서. "가난이 싫은 건가?"라고 내가 물으면, "완전 싫어"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씨는 옛날에 가난했었나요?"라고 물어와서, "그래요"라고 말하면, 그녀들은 대체로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들에게는 가난이라고 하는 상황이 제대로 구체적으로 상상되지 않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으니까 돌연 곤란해지는 것이다. 젊은 여자들을 곤란하게 해서는 나도 역시 난감해지니까, 그 시점에서 나는 서둘러 화제를 바꿔 버린다. 실수로도 가난 자랑 따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 걸 얘기해 봤자 그저 언짢은 분위기가 될 뿐이다.
가난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하고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늙은이 냄새가 난다고 여겨질 것 같고, 미움받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옛날의(20년 전의 *이 책이 출간된 게 1989년이므로 여기서 20년 전이라 함은 1969년 혹은 그 이전) 여자들은 "가난 따위 절대 싫어"라고는 그다지 입에 담지 않았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그랬다. 그녀들은 돈보다는 일단 납득 가능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여자가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도 한가득 있었다. 외제차를 모는 남자가 아니면 데이트 하지 않는다고 하는 여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어디까지나 소수여서, 적어도 나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내 주변에 있던 보통 여자들은 차가 없어도 돈이 없어도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게 돈이 없다면, 데이트를 해도 상대방이 돈을 내 주었다. 그런 건 부끄러움도 무엇도 아니었다. 우리가 바라고 있었던 것은 좀더 다른 것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기꺼이 가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예의 통과의례이지 않은가 여기는 정도로 우리는 마음을 접은 채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실제로ㅡ이런 걸 쓰는 것이 무척 부끄럽지만ㅡ 가난은 참으로 즐거웠다. 여름의 오지게 더운 오후에 머리가 멍해져 찻집에 들어가 냉방을 쐬며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아내와 둘이서 "참자"라며 견디어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무척 즐거웠다. 그것은 지난 일이니까 즐겁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돈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상상력의 문제다.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헤쳐나갈 수 있다. 예컨대 부자로 있든지 거렁뱅이로 있든지.
가난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가난은 사라져 버린 걸까?
일요일 아침에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으면, U 네크라인 셔츠에 축 처진 버뮤다 반바지, 고무 비치 샌들 차림의 아버님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처량할만치 하얀 벤츠를 세차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어이, 아재, 거 퍽 없어 보이네"라고 생각한다. "그건 당신 개인적인 편견 아니야?"라고 아내는 말하지만서도.

- 끝 -

오전 열 시

                                                                                                                 - 주예린 지음

 

 


반짝이는 잎사귀
햇살과 뒤섞인 나무 그늘이
수줍게
흔들리며 노래를 부르는
삼월의
시린
한낮과 아침 사이

뽀얗고 까만 털의
고양이
한 마리가 그늘을
여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헤집고

손을 얼게 하는 바람이
따스한 풍경을 춤추게 하는
봄과 겨울 끄트머리
그 어드메
오전 열 시

바다가 태양을 삼킬 때

 

                                                                                                                 - 주예린 지음



해가 바다로
스며든다
바다는 햇빛 사이로
빨려들어간다

타오르기만 하던 붉던 해는 바다를 덥히며 빛줄기들을 거둬들이고
검푸르던 바다는 코끼리를 집어삼킨 사자의 혈관 속을 헐떡이며 내달리는 짙고 검붉은 피보다도 붉게 더 붉게
붉고 뜨겁게

바다가 태양을 집어삼키고
태양이 바다를 빨아들이면

빛도 어둠도 없는
찰나이자 영원

짙은 보랏빛
꿈틀거리는 동맥
작은 짐승들의 커다란
숨소리

햇살이 달라진 날

                                                                                                                 - 주예린 지음

 

 

 

새들의 지저귐
희뿌연
하늘과 햇살

고동빛 나무들이 옅은
갈빛으로 바뀐
얼어붙어 있던 햇살이
녹아내린
그런 한낮

떡볶이집 아주머니들의
얘깃소리 봄이
봄이 왔다고
무슨 소리야 아직 추운데
아니 아니야
오늘이 입춘이라니까
봄이
왔다고
오늘부터

이라고


봄이 와
있다고

눈물

 

                                                                                                                 - 주예린 지음

 



그것은 저 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지면
따뜻한 비가 되어 수풀과 꽃들의 양식이 되고
새하얀 눈이 되어 온 세상을 뒤덮는 것

대지에서부터 차오르면
온 세상을 적시어 세상이 되는 것
세상을 품고 흘러가
깊고 푸른
바다가 되는 것

(밤의 공원에서. 2023.1.22.21:10)

전철이 보이는 풍경

                                                                                                                 - 주예린 지음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전철에 몸을 싣고
저마다의 종착역으로

나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날 부르는 바람에 몸을 싣고
희미한 향기를 쫓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계약

                                                                                                                 - 주예린 지음

 

 


꿈속에서 나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나도 모르는 새)

영원을 맹세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너라고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네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아침에는 사랑하고
밤이 되면 울부짖고

아무 말 없이
그림자만을 남기고 다니는
악마와의
계약

하룻밤
이틀밤
...
한 달 밤

보름달이 두 번 뜨고
초승달이 두 번 지고

그 사이에 밤의 계약은 성사되어

나는
혼자
있으면서도

악마의 속삭임에 따라
훤한 대낮에도 공기 속에서 헤매고
꿈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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